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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임순만 칼럼]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방식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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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세계 석학들이 최근 펴낸 두 권의 저서가 한국정치를 비롯해 국제정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나는 국제정치학계 현실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와 그의 제자인 노터데임대 정치학 교수 서베스천 로사토가 공동 집필한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서해문집)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연구하고 있는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들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랫이 함께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다.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국제정치에는 합리적 행위자가 존재한다’는 명제 아래 세계에서 비합리적 정책 결정 사례로 알려진 10건의 결정을 검토했다.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 확장 결정과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 결정 등 대전략 5건과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 결정과 소련의 체코 침공 결정 등 위기대응결정 5건을 분석했다. 저자들은 합리성 기준에 따라 이들 결정을 검토한 결과, 10건의 결정이 모두 합리적 결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서방세계에서는 지난 3년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침공을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기기 쉽지 않은 전쟁을 무모하게 감행했고, 더구나 전쟁 금지라는 국제규범을 위반했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푸틴이 세력균형론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이론에 근거해 러시아의 생존을 위협하는 나토의 동진에 맞서 예방적 전쟁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 정책 결정자들과 충분한 숙의를 거쳤으므로 푸틴의 침공은 합리적 행위였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합리성을 ‘신뢰할 수 있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가’ ‘숙고한 심의를 통해 결정하는가’의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두 가지를 만족하면 합리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국제정치가 워낙 불확실성이 강한 세계이므로 결과가 실패로 끝났다고 행위가 비합리적이었다고 할 수 없고,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행위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대체로 비합리적인 행위는 합리적 행위에 비해 결과에서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파악한다.

현재 여론을 달구고 있는 우리나라의 12.3 계엄 문제가 이런 합리성, 즉 신뢰할 수 있는 이론에 근거했는가. 오랜 숙의를 거쳐 결정했는가의 측면에서 본다는 어느 하나의 질문에도 만족할만한 답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 세계정치에 등장한 독재자와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가 독재자가 되어 민주주의의 규범을 파괴하고, 언론과 사법부를 지배하면서 민주적 제도를 무시하고 있음을 경고하는데, 한국 역시 대표적으로 그런 위기에 있음을 시사하는 책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두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자세하게 말한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그런 정치인은 후보를 제대로 가려내는 역할을 하지 않는 정당에서 나온다. 그렇게 등장한 정치인은 곧 독재자가 되어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비판적인 언론을 공격한다.

대중영합주의자들의 특징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다수는 권력을 잡는 데 실패하지만, 일부는 성공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를 비롯해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은 어떻게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저자들은 그 답을 선거 전에 그런 사람을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사라진 것에서 찾는다. 미국의 경우, 각 정당이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동료 정치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동료 정치인들만큼 대선에 나서고자 하는 후보 정치인들의 능력과 인격과 이념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검증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 경험 없는 대중 선동가와 극단주의자를 철저히 가려냈다. 그랬기에 히틀러를 지지했던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는 시민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음에도 대선 후보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얘기가 달라진다. 각 정당은 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한다는 명목으로 프라이머리를 확대해, 당 지도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했다. 후보를 검증하는 정당 기능은 크게 약해졌다.

저자들은 정당의 문지기 기능이 허약해질 때, 주류 정치인들이 권력의 중심에 위험인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독자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부터 페루의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을 거쳐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며,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잠재적 독재자들을 방조했고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한다.

그렇게 선출된 독재자는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며, 민주주의가 붕괴할 때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는가. 저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를 비교한 끝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가 무너졌음을 발견했고, 몇 가지 신호를 패턴화했다.

저자들은 그것을 네 가지 경고신호로 설명한다. △말과 행동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한다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한다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한다 △민주주의를 가장하며 심판이나 사법부를 장악한다.

선출된 독재자들의 심판 매수는 주로 공직자나 비당원 관료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측근을 임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검찰과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을 친 여당 인사로 채워 넣는 것이다.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시민들 다수가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비판자나 경쟁자에게는 소송을 걸거나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게 만든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는 일간지 〈엘 우니베르소〉가 자신을 ‘독재자’로 칭하자 4천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승소했고, 터키의 에르도안과 러시아의 푸틴은 법률을 활용해 각각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 대기업 도안 야인과 NTV 소유주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경쟁자에게는 검찰이 수백 번의 압수 수색을 통해 기소를 해 피선거권을 박탈하려는 방법도 쓴다.

탐욕스런 권력자들은 반대파를 무조건 학대하고, 권한을 남용하며,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을 찍는다. 그들은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 아래서도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는 편법을 쓴다. 이 책에 나오는 민주주의 붕괴를 겪은 유럽과 중남미 여러 나라에는 미국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훌륭한 헌법이 있었지만, 위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미국 역시 잘 조직된 헌법이 있지만 이를 악용한 트럼프가 당선됐다.

두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고, 그 가운데서도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고 꼽는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한다. 제도적 자제는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이 규범들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 저자들은 스페인 내전을 규범 파괴로 인한 민주주의 붕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무엇보다 트럼프의 당선은 민주주의를 지켜오던 두 규범이 무너지면서 정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은 끝에 만들어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이 책은 한국의 정치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를 연구하고 쓴 것이라고 할 만큼 한국정치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 역시 독재와 포퓰리즘의 울타리를 넘기 어렵다. 아니 우리나라는 더욱 심하다. 세계의 독자들이 사용하는 ‘심판 매수’ ‘비판자 탄압’ ‘권한 남용’ ‘비판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기’ 등의 특징은 거의 완전하리만큼 일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야당 지도자에 대해 수백 번의 압수수색을 실시해 기소했으며, 2년이 넘도록 야당을 만나지도 않고 국회에 가지도 않으면서 ‘반국가세력’이라고 몰아쳤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관용과 권한을 자제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 규범들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맘에 안 들더라도 인내하고 국민통합에 힘써야 한다. 이런 정치력을 터득하지 못하면 국정은 혼란의 극치를 겪게 될 것이고, 그 정권은 먼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임순만 소설가·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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