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 미국 조선업과 협력시 기술 유출 우려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그룹
[이코리아] 미국 의회가 중국 견제를 목표로 미 조선업 및 항만시설법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는 소식에 조선주가 강세를 보였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조선 및 항만 인프라 번영과 안보를 위한 법안(SHIPS Act)’을 발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쇠퇴한 미국 조선업 인프라와 역량을 회복하고, 중국의 해상 패권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선적 상선 250척을 목표로, 현재 80척에서 3배로 늘려 전략상선단을 운영한다. 중국 견제 조치로 중국 조선소에서 선박을 수리 시 200% 세금을 부과하며, 2029년부터 중국산 수입품 최소 10%를 미국 선박으로 운송을 의무화한다.
법안에는 동맹과 협력을 모색하라는 내용도 있어 차기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조선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방장관, 교통장관 등의 주도로 동맹국과의 조선업 교류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미국 조선소에 투자하면 25%의 세액공제 혜택이 법안에 담겨있다.
또 전략상선단에 참가한 선박이나 선주가 미국에서 수리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 경우 외국에서 수리해도 세금을 면제해 법안 통과 시 미국 선박을 한국에서 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같은 소식에 국내 기업들의 반사이익이 기대되면서 시장에서 관련주들이 들썩였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전일 대비 8.24% 오른 23만원, 한화오션은 7.04% 상승한 3만575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삼성중공업은 2.77%오른 1만149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조선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3일 “미국이 쇠퇴한 조선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산업 부흥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며 “미국 조선업의 부흥을 원하는 초당적 기조를 고려할 때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공동으로 인수한 미국 필리 조선소를 비롯해 현재 미국 내 조선소 매물을 물색하고 있는 HD한국조선해양의 투자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선업은 전성기였던 2차 세계대전 말기 1만 척의 국제무역 상선을 보유했으나, 현재는 80척으로 급감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재화의 2%만이 자국 선적 선박을 통해 운송되고 있으며, 조선소도 20곳으로 줄어들었고, 대부분 군함 건조에 집중된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조선업과 해운업에서 전 세계 점유율을 급격히 확대했다. 이를 통해 군함 건조 능력을 강화하며 동아시아 해상 패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 연구원은 또 “법안 1차 수혜주로는 미국 조선업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한화오션을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화그룹은 지난 20일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약 1억 달러에 인수해 북미 조선 및 방산 시장에서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기업 최초의 미국 조선소 인수 사례로,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필리 조선소는 노르웨이의 석유·가스·재생에너지 전문기업 아커사의 미국 자회사로,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됐다. 연안 운송용 상선을 전문적으로 건조하며,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등 미국 존스법(Jones Act)이 적용되는 대형 상선의 약 50%를 공급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필리 조선소를 통해 스마트 생산과 친환경 선박 기술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 한화시스템은 자율운항 기술 및 첨단 시스템을 적용해 조선소의 기술 경쟁력을 높일 방침이다.
업계에선 이번 미국의 조선업 및 항만시설법 발의가 한국에 주는 기회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 간 협력은 미국 조선업 재건과 한국의 산업기반 강화라는 공동 이익을 창출할 잠재력을 가진다”면서 “세계 2위 조선 강국인 한국은 법안 통과 시 미국 선박 수리와 유지보수(MRO)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내 핵심 조선기술의 유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9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미국 내 조선 공장 부족으로 단기적으로는 한국 조선사에 호재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기술 유출 우려가 있다”며 “우리나라 조선업이 한 번 침체에 빠졌다가 다시 부활의 기지개를 피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기술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 향후 미국 공장 건설 시 한국 기술 인력의 파견이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수은 기자
저작권자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 많은 기사는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