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폭탄에 조선·방산주 웃고 車업계 비상

사진은 수출 컨테이너가 쌓인 부산항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전면적인 관세 부과가 9일부터 본격 시행되며 한국 산업계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조선·방산 업종은 오히려 관세 회피처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급등한 반면, 자동차 업계는 정면 타격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정책금융 확대 등 긴급 대책을 내놨지만, 무역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맥쿼리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관세 체제에서 소비재 및 은행 등 내수업종보다 반도체와 자동차, 방위, 조선 등 경쟁력 있는 수출 업종을 선호한다"며 "무역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선 특히 방산과 조선이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실제로 지난 8일 HD현대중공업(6.72%), HJ중공업(11.11%), 한화오션(8.32%) 등 조선주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9%), LIG넥스원(4.81%) 등 방산주가 동반 상승했다.
특히 조선업계는 HD현대가 이날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주가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안보 협력 강화와 수출 의존도가 낮은 점이 관세 영향에서 벗어나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방산업계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규모 축소로 투자심리가 개선되며 강세를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기존에 계획했던 3조60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 원으로 축소하면서, 감소한 1조3000억 원은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방식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이번 증자에는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싱가폴 등 3개 계열사가 참여할 예정이며,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한화에너지가 할인 없이 참여하게 된다. 이에 대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대주주의 희생을 통해 기존 소액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3월 20일 3.6조원 유상증자 발표 후 제기된 의문들을 공시 및 미래비전 설명자료로 해명했다. 여러 의심에 대해 투명함과 성장으로 답했다"며 "유증으로 지배구조 리스크가 해소되고 성장이 확대될 것이며, 남은 절차는 증권신고서 수리"라고 평가했다.
반면, 자동차 업계는 미국의 25% 관세 폭탄에 직격탄을 맞았다. 자동차·부품이 우리나라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만큼 미국 정부의 25% 관세부과 조치로 국내 자동차 산업에 상당한 충격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9일 '자동차 생태계 강화 긴급 대응방안'을 발표하며 정책금융을 기존 13조원에서 15조원으로 확대하고, 현대기아가 1조원을 추가 출연하기로 했다. 전기차 보조금도 기존 20~40%에서 최대 80%로 상향하며 내수 판매 지원에 나선다. 6월 종료 예정인 신차 구매 개별소비세 탄력세율 적용(5→3.5%)과 노후차 폐차 후 신차 구매시 개소세 70% 감면도 필요 시 연장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관세 피해 기업에 법인세·관세 납부 유예(최대 9개월)를 적용하고, UAE·멕시코 등과의 FTA 협상 재개로 시장 다변화를 추진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단기적 완충책일 뿐"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차‧기아도 정부 지원에 호응해 1조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금융권 및 기보·신보·무보와 함께 중소 협력사의 대출·보증·회사채 발행을 도우려는 취지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제너럴 모터스(GM), 도요타, 포드에 이어 점유율 4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업체인 GM과 포드를 빼면 도요타와 현대차·기아가 현지에서 수입차 점유율 1·2위 업체인 셈이다.
현대차·기아 최고경영자(CEO)들은 상황을 따져보며 셈법 계산에 들어갔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일 2025 서울모빌리티쇼 미디어데이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과 관련, "현재 미국에서 (자동차) 가격을 인상할 계획은 없다"며 "관세 발표를 봤고 그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호성 기아 대표이사 사장도 "기아는 유연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고 있다"며 "미국 가격 인상은 검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미국 정부의 25% 고율 관세 부과에도 당분간 현지 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오는 6월 2일까지 기존 재고를 활용해 판매를 유지한 뒤, 향후 관세 영향 등을 고려해 단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만 재고가 소진되면 관세 부담을 반영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박주근 대표는 9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정부 정책이 아마 수출 보조금 형식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클 것 같은데, 지금은 정부가 협상 전략을 어떻게 가는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이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라며 "조선과 반도체처럼 미국이 필요로 하는 산업을 유리한 카드로 활용한 협상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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