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의 노동정책] ‘정년연장’ vs ‘퇴직후 재고용’ 맞서

지난 2023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생산인구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령자 계속근로를 통해 성장둔화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년 연장’과 ‘퇴직 후 재고용’ 중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일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를 내고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노동공급 감소와 성장 잠재력 저하를 완화하기 위해 고령층 인력의 적극적인 활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고령층이 더 오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실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지난 2000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17년 14%에 다다르며 고령 사회로 진입했으며, 이후 점차 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고령 사회 진입 7년 만인 지난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됐다.
인구 5명 중 1명이 고령자인 상황에서 이들의 경제활동이 멈춰버린다면 소득 공백에 따른 노령빈곤 등의 사회문제는 물론 생산인구 부족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 등의 문제가 심화될 위험이 크다.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고령자 계속근로 방안이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계속근로 방식이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고령화 대응을 위해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20대 민생의제에는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당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연내 입법을 추진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은은 최근 정치권 및 노동계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정 정년 연장의 부작용이 지나치게 크다며 퇴직 후 재고용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연공서열식 임금체계가 개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만 연장한다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이는 청년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한은은 지난 2016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상향한 이후 청년층 고용상황이 악화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6~2024년 중 정년 연장 대상인 55~59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은 1.8%포인트, 근로자 수는 약 8만명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23~27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은 6.9%포인트, 근로자 수는 약 11만명 줄어들었다. 한은은 이 시기 법정 정년 연장으로 인해 고령층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층 근로자는 0.4명~1.5명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한은은 연공형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 연장의 부작용이 뚜렷한 만큼 퇴직 후 재고용을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기업이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와 기존 근로관계를 종료한 후,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용이하고 근로시간 등 기타 근로조건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
실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이미 다양한 방식의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했는데, 대체로 계속고용 이후 고령층 근로자의 임금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은이 인용한 일본 다이와종합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55세 시점에서 정규직이었던 일본 근로자가 계속고용 이후 임금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경우는 78.3%에 달했다. 임금이 40% 이상 감소했다는 응답도 40.3%나 됐다.
한은은 “이러한 결과는 계속고용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임금 조정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며 우리나라도 재고용 제도 안착을 위해 재고용 시 임금 등 근로조건 조정이 가능한 합리적인 범위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한은의 이 같은 주장이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노동계가 퇴직 후 재고용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21일 성명을 내고 “(계속고용 방식을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한다면) 법정 정년은 그대로 60세로 두고, 정년 이후 고용방식에 대해 기업의 재량권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비용절감과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굳이 정년 연장을 선택할 이유나 동기를 갖지 못할 것”이라며 “숙련노동자의 경우 노동력을 유지하거나 향상되더라도 임금만 큰 폭으로 떨어지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년 60세를 넘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 정당화될 우려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이어 “지금의 소득공백 문제 해소와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법정 정년 연령을 일치시키는 안으로 65세 정년연장을 위한 법 개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년 연장과 재고용으로 엇갈린 사회적 논의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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