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한 임직원 다수의 사익추구 행위가 드러나면서, 증권사 내부통제 역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 또한 증권가를 향한 규제 고삐를 강력하게 조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동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최근 검사 결과 다수의 금융투자 회사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건전 영업행위와 사익추구 행위가 지적되고 있다”라며 “이러한 상황을 업계 관행이라거나 일부 임직원의 일탈행위 정도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며, ‘성과 만능주의’가 금융투자업계 전반에 만연함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언급한 내용은 최근 금감원이 발표한 증권사 기획검사 결과에 대한 것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0일 다올투자증권, 메리츠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 5개 증권사에 대한 부동산 PF 기획검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0~12월 진행된 검사에서는 해당 증권사 임직원들의 사익추구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A증권사 임원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취득한 사업장 개발 진행정보를 이용해 시행사 최대주주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수천만원에 사들인 뒤 약 500억원에 매각해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B증권사 임원은 본인이 직접 브릿지론을 취급하고 대출도 주선한 PF 사업장 4곳에 대한 정보를 악용해 시행사에게 700억원을 사적으로 빌려준 뒤, 수수료·이자 등의 명목으로 40억원을 챙겼다. 특히 일부 대출 건(3건, 600억원 상당)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금리(20%)를 넘는 고리의 이자를 편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내부통제 취약에 따른 부실 문제도 불거졌다. C증권사 영업부는 PF 대출 취급 과정에서 차주를 X사로 심사・승인받았지만, 실제로는 X사의 관계사인 Y사와 대출약정을 체결했다. 영업부가 임의로 차주를 변경했음에도 C증권사 심사부는 아무런 이견도 제기하지 않았다.
D증권사는 채무보증 의무 이행을 회피하기 위해 유동화 특수목적법인(SPC) 간 자금을 임의대차했다가 금감원에 적발됐다. D증권사는 자산관리중인 유동화 SPC의 자금이 부족해 유동화 증권에 대한 채무보증(매입확약 등)을 이행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다른 사업장의 유동화 SPC에서 자금을 임의로 차입하는 방식으로 채무보증 이행 의무를 회피했다.
이같은 증권사 내부통제 부실 문제는 지난해부터 반복해서 지적받아왔다. 다수의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차액결제거래(CFD) 및 영풍제지 사태 등에 대해서도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예방할 수 있는 사태였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증권사를 향해 내부통제 강화를 반복해서 요청해왔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해 7월 27개 국내외 증권사 CEO를 소집해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증권사의 불법적 영업관행은 CEO의 책임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당시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감사부서 등 어느 곳도 위법행위를 거르지 못하였다면 이는 전사적인 내부통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진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에도 증권사 감사‧준법감시인‧CRO 및 금융투자협회 전문가와의 간담화를 열고 증권사의 금융사고 예방 및 보고체계에 대해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보는 “CFD와 영풍제지 사태 등에서 드러났듯이 리스크관리 및 내부통제 수준에 따라 손실규모는 완전히 달라진다”라며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는 더 이상 번거롭고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증권사 내부통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증권사 금융사고는 14건, 손실 규모는 668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9~2022년 증권사 연간 사고 건수(7.8건) 및 손실 규모(143억원) 평균치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증권사에 대한 징계도 수백 건에 달한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KB·신한·한국·하나·NH·메리츠·삼성증권 등 국내 7개 종투사에서 2021년부터 2023년 9월 말까지 ‘문책’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진 경우는 총 412건으로 집계됐다. 증권사별로 보면 KB증권이 11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는 신한투자증권(98건), 한국투자증권(97건), 하나증권(65건) 등의 순이었다.
미래에셋·키움증권의 경우 중징계는 없었지만 다수의 경징계를 처분받았다. 미래에셋증권은 3년간 1076건의 현장조치 징계와 151건의 지적을 받았으며, 키움증권 또한 같은 기간 개선 53건, 현지주의 10건, 현지시정 22건 처분을 받았다.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금융사고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증권사를 향한 규제 고삐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기획검사 대상 증권사 CEO들이 내부통제 기준 마련 및 운영에 소홀해 부동산 PF 관련 임직원 비위가 발생했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금감원이 CEO 징계 여부를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이 원장은 24일 간담회에서 “내부통제의 최종 책임자인 CEO께서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해 준법 리스크 감사 등 내부통제 조직이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확충하고 위법행위 임직원에 대해서는 온정주의를 타파하고 징계, 구상권 행사 등 단호하게 대응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라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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