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해상 운송의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연료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 해운업계도 기후 관련 규제에 적응하기 위한 로드맵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7월 열린 제8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 회의(MEPC 80)에서 오는 2050년까지 국제해운의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하는 ‘2023 온실가스 감축전략’을 채택했다. 기존에는 국제해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이를 100%로 상향한 것.
국제해사기구는 또한 탄소감축 중간 점검 목표를 제시하는 한편, 선박 제조부터 운항까지 해송 운상의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관련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또한, 올해 초부터는 신규 건조된 선박뿐만 아니라 운항 중인 선박에 대해서도 온실가스 규제를 적용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제해사기구가 탄소중립 목표를 상향하고 관련 기준을 강화한 것은 해상 운송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해운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증가 속도는 다른 산업보다 가파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해운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2014~2018년 5년간 약 2.3%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배출량 증가율(연평균 약 1%)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해운산업에도 탄소중립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친환경 연료 확보가 각국 해운업계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장경석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친환경 선박 연료와 녹색해운항로 경쟁’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친환경 선박 연료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이오 ▲이퓨얼(e-fuel)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이다.
바이오 연료는 식물·동물·미생물 등 살아있는 유기체 및 그 대사활동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활용한 것으로, 고밀도 에너지가 필요하고 전동화가 어려운 수송 부문에서 가장 현실적인 탈탄소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바이오 디젤·가스 등의 형태로 사용되고 있지만, 선박 엔진 수명 단축 등의 문제가 남아있어 최적화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 기반 연료(Electricity-based Fuel)인 이퓨얼은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수소와 포집·저장 기술로 얻은 이산화탄소·질소 등을 결합해 만든 친환경 연료로, 그린수소를 사용할 경우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이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어 일반 연료의 8배에 가까운 가격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에너지 효율도 떨어져 선박 연료로 활용하려면 기술이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
컨테이너선에 사용되기 시작한 메탄올은 현재 선박에 가장 적합한 친환경 연료로 평가받고 있다. 상온에서도 액체 상태로 자유롭게 저장·이동할 수 있는 데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화석연료 대비 매우 적고 설령 유출되더라도 바닷물에 녹아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 다만 탄소배출 없이 생산되는 그린 메탄올의 경우 생산비용이 너무 높아, 그 생산량이 아직 메탄올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암모니아도 차세대 탈탄소 선박 연료로 각광받고 있다. 암모니아는 공기보다 가벼워 환기성이 좋고 냄새가 강해 누출사고 위험이 적으며, 가솔린에 비해 폭발 가능성도 낮다. 이 때문에 해운업계에서도 암모니아를 무탄소 선박 실현을 이뤄줄 연료로 지목하고 1~2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노력 중이다.
하지만 ▲강한 독성과 부식성을 가진 만큼 높은 안전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 ▲점화를 위한 별도 연료가 필요한 데다, 무겁고 부피가 커 기존 화석연료보다 4배 이상 큰 탱크가 필요하다는 점이 암모니아의 단점으로 꼽힌다.
수소는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연료전지의 화학 반응을 통해 선박에 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원이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그린수소는 친환경적인데다 엔진의 내구성도 향상시킬 수 있어 암모니아와 함께 근본적인 친환경 선박 대안으로 꼽히지만, 영하 235℃ 액화 장치가 필요해 저장 탱크가 기존 연료 탱크 대비 7배 이상 커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현재 해운업계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부분의 친환경 선박 연료는 뚜렷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술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해상 운송 전 과정에 대한 기후 관련 규제가 강화될수록 각국 해운사들의 기술 개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해운업계의 탈탄소화는 단순히 선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운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기존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대체하는 것은 물론, 친환경 선박을 지원하기 위한 친환경 항만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 친환경 선박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관련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항만은 노선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다.
보고서는 “글로벌 주요 허브항만의 탈탄소화 관련 인프라 구축 유무에 따라 친환경 선박이 기항하는 노선은 자연스럽게 재편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허브항만 지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녹색해운항로 구축의 노력이 본격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각국 정부는 해운산업의 탈탄소화에 적응하기 위해 기술 개발 및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제 강화에도 동참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의 온실가스 감축전략은 회원국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사항이 아니지만, 해운업계의 탈탄소 흐름에 적응하려면 화석연료를 고집하는 해운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수단이 필요하기 때문.
실제 유럽 의회는 지난 3월 선박 연료의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해상 연료 기준 이니셔티브에 합의했는데, 해당 법안 패키지는 유럽 선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25년 2%, 2030년 6%, 2035년 14.5%, 2040년 31%, 2050년 80%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또한 선박이 배출하는 탄소 1톤당 150달러를 부과하는 국제해양오염책임법을 발의한 상태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해운업체로서도 장기적으로 탈탄소 연료로의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친환경 선박으로의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 중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친환경 선박연료 공급망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해수부는 오는 2030년까지 국내 항만에서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비증을 30%(402만톤)까지 확대하고, 친환경 컨테이너 선박 입항 비중 또한 같은 기간 20%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한, 2030년까지 5000톤 이상 국적 외항선 118척을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하고 국내 항만과 미국·호주·일본 등의 주요 항만을 연결하는 녹색해운항로 구축에도 나설 방침이다.
장경석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녹색해운항로 개발 투자는 조선 기자재뿐 아니라 관련 전후방 산업의 생산 유발 효과로 2030년까지 17조 원, 2050년까지 최대 158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탄소중립 시대의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연료 공급사, 해운사, 물류사, 조선사, 항만 등을 비롯한 밸류체인을 잇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투자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인 만큼, 금융권에서는 관련 기업들에 대한 투자 기회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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