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법원에서 열린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출처-뉴시스]
[이코리아] 최근 대법원은 정부가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접근권’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에선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성 실태조사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애인의 접근성 보장에 대한 논의는 1984년 지체장애 청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 김순석씨 ‘서울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자신의 지하셋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97년 제정되었다. 2007년엔 장애인의 권리 보호와 차별 없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현재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2018년 지체장애인 김 모 씨 등 3명이 정부를 상대로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당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는 300㎡(약 90평) 이상의 시설에만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소규모시설 95%가 장애인 편의제공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소송 진쟁 중 2022년 50㎡(약 15평) 이상으로 개정했지만, 여전히 법 시행 후 시설에만 적용, 장애인 접근권은 완전히 보장되지 못한 상태다.
미국의 경우 미국 「장애인법(ADA)」에 대한 미국 법무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신축과 ADA 제정 이전에 지어진 기존 건물은 물리적 장벽 제거를 요구하고 있다. 물리적 장벽 제거가 어려운 경우에는 도움벨 설치, 이동식 경사로 설치 등의 인적서비스와 같은 대안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장애인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국가가 당사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며 “김 씨 등 2명에게 각 10만 원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95%가 넘는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한 이 사건 규정이 24년 넘게 개정되지 않아 장애인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을 지속해서 감내해 왔다”라며 “개선 입법 의무를 14년 넘게 불이행한 국가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는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라고 판단하였다.
이어 장애인 단체가 지속해서 개정을 요구했고 유엔(UN) 장애인 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공무원들이 개정하지 않고 규정을 방치했다며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라고 국가배상을 인정하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부진정 행정입법 부작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면서, 장애인의 접근권이 헌법 규정들로부터 도출되는 기본권의 지위를 가진다는 점을 처음 확인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성명을 통해 “이 판결은 시행령을 불충분하게 규정하여 모법의 위임 취지를 도외시하고,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게 할 경우 이러한 정부의 행정입법행위는 위법할 뿐만 아니라 국가배상책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추후 장애인권의 보장을 위한 소송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법리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공무원들의 위법성 인식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밝혀, 국제인권기구 권고의 효력이 권고적 효력에 그친다는 그간 판례의 법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라며 환영했다.
민변은 시행령과 부칙조항을 개정함으로써 소규모 소매점 등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하여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민변은 “바닥면적 등 규모에 따라 일부로 제한하는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며 “소매점 외에도 미용실, 음식점, 장례식장, 영화관, 목욕탕 등의 기타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성 실태 조사도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소송을 같이 진행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회에 한 일원으로서 권리 주체라는 것을 인정받는 순간으로, 대법원장님의 판결 한 자 한 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또 한 번 전진하는 것이고, 40년 전 돌아가신 김순석 열사의 가슴에 맺혔던 한을 이제 조금 풀어줄 수 있게 됐구나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는 소송 이후 가만히 있지 않고 판결이 날 때까지 함께 싸워왔다. 이제 이 선고를 앞장세워서 국가를 상대로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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