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논의를 앞두고 있는 「형법」 제98조 개정과 제98조의2 신설 등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명 간첩법으로 불리는 「형법」 제98조 개정 논의는 국군정보사령부의 ‘블랙요원 리스트’ 유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블랙요원’들의 신상정보를 중국에 유출한 정보사령부 군무원은 간첩죄 적용이 안 되면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 간첩법에는 간첩죄 적용 범위가 ‘적국’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국제정세 변화로 과거와 달리 적국 개념이 모호해지고, ‘블랙요원 리스트’ 유출 사건처럼 적국이 아닌 동맹국이나 우방국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경우엔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한다. 이에 해외 기준에 준하게 간첩죄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요 국가들은 적국에 대한 표현 없이 간첩행위만으로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중국은 2021년부터 「반 간첩법」을 시행하여 간첩행위뿐만 아니라 ‘국가를 배신하도록 선동·유혹·매수’하는 행위까지도 처벌 대상에 포함했고, 미국은 「연방법(U.S. Code)」, 「경제스파이법(EEA)」과 「영업비밀보호법(DTSA)」을 제정해 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한 경우는 물론 산업 기밀 유출 행위도 사실상 간첩죄로 간주하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간첩죄의 구성요건을 기존의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는 행위’에서 ‘적국,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하여 지령, 사주,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수정·신설하는 것이다.
국회의 이러한 움직임에 시민단체는 재논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내놓았다. 지난 1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함께하는 ‘국정원감시네트워크’에서는 “국정원 권한 남용으로 간첩혐의자 양산과 민간사찰 등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다”라며 「형법」 일부개정안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단체에선 “국가기밀에 대해서 어떠한 제한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외국 등과 의사 연락하는 국민 누구라도 국정원의 간첩 혐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라며 “국가기밀의 개념에 관해 명시해야 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국가정보원의 국내 사안에 대한 폭넓은 개입을 용인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목소리가 나오는 데에는 대법원의 판결이 근간이 된다. 대법원은 1997년 간첩죄의 ‘국가기밀’의 개념과 관련하여 “비공지성(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정보)과 실질비성(실질적인 비밀정보)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도, “그 기밀이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누설될 경우 반국가단체에는 이익이 되고 대한민국에는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성이 명백하다면 이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97도985 전원합의체 판결].
시민단체는 “이 판례의 법리를 그대로 개정안에 적용한다면 외국 등과 의사 연락하는 국민 누구라도 국정원의 간첩 혐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간첩법」 개정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함께 당론으로 추진해 왔다.”라며 “국민의힘 당론대로 국정원의 수사권까지 복원된다면 모든 국민에 대한 간첩 조사를 넘어 간첩 수사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완전한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정보기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개정 반대는 아니다. 시만단체는 “다만, 독일 「형법」은 국가기밀의 개념을 ‘독일연방공화국의 외적 안전에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한정된 범위의 사람에게만 그 접근을 허용하고 타국에 대하여 비밀로 하여야 할 사실, 물건, 지식’으로 규정하고 있다”라며 “이와 같이 최소한의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이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최한 ‘현행 간첩법제의 문제점과 혁신방안’ 세미나에서도 나왔던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현행 간첩죄 관련 규정들은 형법의 경우 그 대상이 ‘적국’, 군형법의 경우엔 ‘적’으로 명시돼 있다”며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것 이외에 간첩행위의 대상인 기밀의 범위를 정하되, 구체적으로 1급 이상의 국가기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산업에 관한 기밀 등으로 명시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 ‘외국과 이에 준하는 단체’라는 표현만으로는 북한 간첩을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간첩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 입법 토론회’에서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를 형법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반국가단체’를 반드시 삽입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적대하는 외국, 외국인 단체 및 반국가단체에 대한 간첩행위’와 단순 ‘외국 및 외국인 단체’에 대한 간첩행위는 불법의 경중 차이가 존재하므로 형의 차등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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