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메리츠증권이 수수료 무료를 내세운 공격적인 리테일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기업금융(IB)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리테일 부문을 강화해 수익원을 다양화하겠다는 계획인데, 기존 리테일 강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메리츠증권은 종합투자계좌인 ‘슈퍼(Super)365 계좌’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오는 2026년 말까지 국내·미국 주식 거래 수수료 및 달러 환전 수수료를 전면 무료화한다고 지난달 말 밝혔다. 증권사가 고객 수수료를 완전히 무료화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는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 거래 시 각각 0.009%, 0.07%의 수수료율이 적용됐으며, 달러 환전 수수료 우대율도 95%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신규 고객 모두 오는 2026년까지 0%의 수수료로 국내외 주식거래 및 환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슈퍼365 계좌를 이용하면 예수금에 연 3%대의 이자도 받을 수 있다.
전통의 IB 강자로 꼽히는 메리츠증권이 이처럼 파격적인 이벤트로 리테일 영업에 나선 것은, 해외 주식거래 수수료가 증권사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연초 ‘밸류업’ 훈풍을 타고 상승하던 국내 증시가 하반기 들어 약세로 전환하면서 해외, 특히 미국 증시로 눈을 돌리는 서학개미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지난 18일 기준 1121억1815만 달러로 연초(673억6297만 달러) 대비 447억5518만 달러(66.4%)나 증가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미국 주식 거래 수수료율은 국내 주식 대비 높은 만큼, 다수의 서학개미를 신규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다면 상당한 수수료수익을 거둘 수 있다. 현재는 전통의 리테일 강자인 키움증권과 직관적인 UI로 차별화에 성공한 토스증권 등이 각각 해외주식 리테일 시장을 30%, 20%가량 차지하며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모양새다.
메리츠증권의 경우 그동안 리테일 부문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 실제 메리츠증권 전체 순이익에서 리테일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이다. 경쟁사인 신한·하나·KB증권 등의 리테일 비중이 30~60%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주식 투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주식 투자를 시작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이 아닌 금융자산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리테일 시장도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는 만큼, 증권사에게도 리테일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메리츠증권도 우선 기존 리테일 강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수수료 전면 무료라는 공격적인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새 앱에 적응하는게 불편해서 기존 증권사 앱만 써왔는데, 이 정도 혜택이라면 한 번 체험해볼 만 한 것 같다”, “너무 조건이 좋아서 오히려 불안할 정도” 등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투자자의 호평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슈퍼365의 예탁 자산은 수수료 전면 무료 이벤트가 시작된 지난달 18일 9300억원에서 이달 12일 2조19억원으로 1조원 넘게 급증했다. 같은 기간 신규 개설된 슈퍼365 계좌 수 또한 3만5000여개로, 일평균 1400여개의 계좌가 새로 개설됐다.
다만 메리츠증권이 리테일 시장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소비자보호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메리츠증권은 리테일 비중이 크지 않은 만큼 증권가의 고질병인 ‘전산장애’ 관련 민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메리츠증권 모바일 앱인 ‘메리츠스마트’에서 지난 19일 오후 6시경 전산장애가 발생해 약 4시간 동안 미국주식 프리마켓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산장애는 이날 오후 10시경 해결됐고 이후 미국 주식 거래가 재개됐다. 메리츠증권은 앱을 통해 “프리마켓 주문 장애로 인한 보상 기준 및 신청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3분기까지 총 98억원의 전산운용비를 썼다. 리테일 부문 1위인 키움증권(824억원)에 비하면 약 12% 수준으로, 상위 10개 증권사 중 전산운용비를 100억원도 쓰지 않은 곳은 메리츠증권 뿐이다. 향후 리테일 부문 확대 전략이 지속 추진된다면, 고객보호 및 인프라 구축을 위해 경쟁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거래 등의 논란으로 인한 투자자 불신도 해소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진용)는 지난 19일 메리츠증권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메리츠증권이 미공개 정보를 악용해 이화전기 등 이그룹 계열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신주인수권을 행사한 주식을 매도한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에도 메리츠증권 본점 및 IB부서 관련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메리츠증권이 전산인프라 구축 및 부정거래 의혹 해소 등의 과제를 해결하고 리테일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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