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그리고 교사로서 활동하면서, 아이들 간에 놀림이 발생하면, 그것을 인지하는 즉시 개입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유아가 다른 아이에게 “메롱, 메롱!”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듣는다던가, 어떤 청소년이 자신의 급우나 동생에게 “너 축구 되게 못하잖아, 하하!” 하는 식으로 그의 실력이나 외모 등을 갖고 비하하는 경우, 그것이 농담 비슷하게 들린다 할지라도 바로 그 둘 사이에 개입하여 그 일을 멈추게 하고, 그 말이나 행동을 한 아이를 꽤 엄중하게 훈육하고, 그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도록 지도한다. 재발 방지에도 최대한 힘쓴다.
나는 그렇게 지도하는 일이 아이들 간의 건강한 관계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왕따를 비롯한 심한 괴롭힘은 아주 작은 놀림이나 따돌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작은 불씨들을 신속하게 눌러 끄지 않으면, 금세 큰 불이 번져 아이들 간에 놀리고 따돌리고 상처 주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
아래의 사례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생각해 볼 부분이 있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소개를 하고자 하니, 읽는 분들의 양해를 먼저 구한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에릭과 딜런이라는 두 학생이 계획적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13명을 살해하고 21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학교에서 일어난 최초의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사전에 그 두 학생은 학교에 시한폭탄을 설치해 놓았으나 어떠한 오류로 터지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문가들은 만일 그 폭탄이 제대로 터졌다면 수백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그 사건을 폭탄 테러 미수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그 충격만큼이나 관심도 엄청났기에, 미 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었고, 수사 기관도 사후 면밀한 조사를 통해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또한 여러 전문가와 연구자들 역시 이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무엇보다 같은 학교 학생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했고, 에릭과 딜런이 그 일을 시행하기까지 주변인들이 뚜렷한 징후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도 그러했다.
특별히 딜런의 경우 매우 정상적인 가정에서 많은 사랑과 적절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아이였다. 사건이 일어나는 날까지도 부모와의 관계 및 소통이 원활했다. 건강한 친구 관계도 여럿 있었고 했기에 부모는 자기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지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에릭과 딜런에게 각각 뇌건강(정신건강) 상의 문제가 있었다. 에릭은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를 갖고 있었고, 딜런은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숨기고 있었지만)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에릭의 반사회성과 딜런의 죽고 싶은 충동이 상호 작용을 일으켜 참사가 일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조사관은 당일 그 둘의 심리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날 에릭은 남을 죽이려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신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편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가 누군가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뇌건강의 문제가 이 사태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뇌건강에 이상이 있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뇌건강 문제가 어디서 기인했는지에 대한 부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개의 경우 그런 문제는 일부 유전적 소인, 일부 환경적 요인에 기인한다 여겨진다.
후에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콜럼바인고등학교는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았던 반면 학생들 간의 괴롭힘이 만연해 있었다. 특별히 운동부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이 빈번했으나 여러 이유로 인해 그들의 행동은 제대로 제지되지 않았다.
에릭과 딜런 역시 그런 괴롭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역시 나중에 밝혀 진 일이지만, 그 둘은 학교 복도를 지나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당했는가 하면, 남자 아이들 여러 명에게 조롱과 밀침을 당하고 게이라 놀림을 받으며 옷에 빨간 물이 들 정도로 케첩 세례를 받은 날도 있었다. 한편 그 둘은 때로 가해자가 되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2011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에 따르면 미 고등학생의 20%가 최근 30일 이내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괴롭힘을 당한 학생의 비율은 더 높았다.
우리는 대개 아이들 간의 괴롭힘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그에 대한 대처도 대체로 미온적이다. 그러나 그 괴롭힘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뇌)의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뇌건강(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 증상은 성인이 된 이후에까지 이어질 수 있다. 괴롭힘과 우울증, 자살 사이에도 강한 연관성이 있다. 뇌건강에 이상이 있는 모든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한 사람들의 90~95%는 뇌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괴롭힘을 받은 일이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는 보다 복잡한 사안이기는 하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기에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 날 콜럼바인에서 두 학생이 13명을 죽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총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목수가 근처에 15개의 십자가를 세웠는데, 몇몇 사람들이 와서 두 개를 없애 버렸다. 그 두 개를 치운 이들의 마음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십자가 15개를 세운 이의 뜻도 헤아려 볼 만하다.
13명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타인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이들의 책임이 오롯이 그들 스스로에게만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나이브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어령 선생은 남이 내쉰 숨을 내가 다시 들이키듯 우리 인간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중요하다.
만일 콜럼바인고등학교에 괴롭힘의 문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교내에서 가해지는 사소한 괴롭힘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고 제지되어서 괴롭힘 문화의 불길이 학교 전체를 덮고 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에릭과 딜런 중 하나라도 그 뇌건강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겪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특별히 딜런의 경우 (그 일기장의 기록을 보았을 때)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 우울증을 겪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에릭과 딜런이 살해한 그 13명 중에 정작 에릭과 딜런을 괴롭힌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엉뚱한 이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으로 자신의 분노를 쏟아낸 그 둘의 죄가 중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에릭과 딜런을 둘러싼 교육 환경이 달랐다면, 또는 콜럼바인고등학교의 문화가 달랐다면, 결과도 달랐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교육은 예방의학과도 같다. 자녀(학생)들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엄하게 지도하는 일이 가정과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큰 불이 번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교육의 예방의학적 역할을 자주 간과하는 것 같다. 아이들 간의 작은 놀림이나 괴롭힘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 작은 놀림이나 괴롭힘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들이 조금만 더 품을 들여 자신의 자리에서 화재 예방 순찰을 돌았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문화를 심어 주는 것이 품이 많이 들고 때로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 일이긴 하나,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더 많은 이들이 아이들의 문화를 빚어 간다면, 장기적으로 분명 더 건강한 개인,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이송용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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