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부당대출 등의 사태 수습을 위해 임기를 채워달라고 주문했다. 그동안 우리금융을 강하게 비판하며 엄벌을 예고해온 이 원장이 돌연 임 회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발언을 하자 그 속내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임 회장이 (사태를) 정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기회 될 때마다 사석에서 많이 밝혀왔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사태를 강하게 비판해온 이 원장이 임 회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지난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을 비롯해 각종 대형 금융사고로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드러난 우리금융에 대해 계속해서 강경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실제 이 원장은 지난해 10월 임원회의에서 “조직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파벌주의 용인, 금융사고에 대한 안일한 인식,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경영체계 지속 등으로 건전성 및 내부통제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라며 “우리금융의 내부통제와 건전성 관리 수준이 현 경영진이 추진 중인 외형확장 중심의 경영이 초래할 수 있는 잠재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지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부당대출 사고와 관련해서는 우리금융 현 경영진의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도 있었다. 이 원장은 지난해 11월 “임종룡 현 회장과 조병규 현 행장 재임 시에도 유사한 형태의 불법이 확인됐다”며 “불법이나 위규 비리에는 무관용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임 회장이 오는 2026년 3월까지 예정된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부당대출 총 730억원 중 451억원(61.8%)이 임 회장이 취임한 지난 2023년 3월 이후 시행된 만큼, 임 회장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
하지만 이 원장이 임 회장이 사태 수습을 위해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분간 임 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잡음도 사라지게 됐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원장이 임 회장의 임기 보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배경에는 리더십 공백이 발생할 경우 우리금융을 둘러싼 각종 논란을 수습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원장은 “우리은행 내 현실적으로 파벌도 존재하고 내부통제가 흐트러진 상황에서 임종룡 회장이 갑자기 빠지게 되면 거버넌스 관련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우리금융의 파벌문화가 내부통제 부실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금융의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은 지난 1999년 외환위기 당시 상업·한일은행의 대등한 합병으로 설립됐다. 그동안 요직을 상업·한일은행 출신 인사가 번갈아 맡으며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해왔지만, 두 조직 간의 화학적 결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임 회장은 1981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국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총리실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관 출신 인사다. 지난 2013년에는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아 비은행 부문 강화를 추진하며 그룹을 성장시킨 경력도 있다. 외부 출신으로 민관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임 회장은 우리금융의 고질적인 병폐인 파벌문화를 해소하고 조직을 쇄신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우리은행은 최근 상업·한일은행으로 양분된 퇴직직원 동우회를 우리은행 동우회로 통합하는 등 파벌문화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임 회장 또한 역대 행장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며 동우회 통합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원장이 임 회장 거취와 관련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면서 최근 진행 중인 동양·ABL생명 인수도 힘을 받을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우리금융이 최근 진행 중인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 이하를 받으면 생보사 인수가 어려워진다.
이 원장은 “경영실태평가 도출 및 그 이후 이어질 자회사 편입 문제 등은 원칙대로 엄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3등급 이하의 평가가 나오더라도 금융당국이 우리금융에 유리한 결정을 내려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 2004년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 당시 경영실태평가 종합등급이 3등급이었지만 자회사 편입 심사를 통과한 바 있다.
한편, 이 원장은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임 회장이 임기를 지키고 거버넌스가 흔들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거꾸로 회장님이나 행장님 입장에서 보면 본인들이 직을 걸고 체질 개선 및 환골탈태를 이끌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임 회장이 남은 임기 동안 ‘용퇴’가 아닌 ‘조직 쇄신’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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