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리아] 한국인이 살아가고 있는 2025년의 3월은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에게는 안락해 보일지는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너무나 잔혹하다. 21세기 지구촌의 선진국을 자처했던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3일 밤 뜬금없는 비상계엄 조치 이후 짙은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국가의 모든 논의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논란 속으로 말려들어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세계정세가 대변혁을 이루고 있는 중에도 우리의 경제와 외교는 깨어날 징후도, 세계와 보폭을 맞출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환율은 치솟고 증시는 연일 폭락 중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논란은 언제 마무리될 것인지, 사회구성원 서로가 얼마만큼 찢긴 후에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두꺼운 먹구름장 아래서 위안을 얻은 말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저서 <빵의 쟁취>를 남긴 러시아 아나키스트 표트르 A 크로포트킨(1842~1921)이 말한 ‘시인의 아이’라는 개념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노동자가 비좁고 악취 나는 다락방에서 숨이 막힐 듯이 어렵게 살고 있다. 그 노동자의 아이는 좁은 다락방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대저택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시를 썼다. 아이의 시는 깊은 갈망과 좌절 속에서 공기와 햇볕, 나뭇잎과 산들바람을 갈망한 것이었다. 그 갈망은 너무도 진지하고 순진한 윤리로 질문한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읽혔다.
아이는 단순명료하게 질문한다. 이 다락방의 공기와 저 대저택의 산들바람은 왜 다른가. 왜 누군가는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을 고민할 때 누군가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야 하는가. 도시에서 펑펑 쓰는 전기를 나르기 위해 왜 농부는 평생 일구어온 땅을 빼앗겨야 하는가. 새끼에게 젖을 물리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동물은 왜 악취 나는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끌려가야 하는가.
아이는 마침내 왜 우리는 이런 비참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체제의 공범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도달했고, 그런 질문에 눈뜬 아이는 훗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편에 선 어른이 되었다.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는 나카무라 쓰네(中村彛)의 1920년 그림 <예로센코씨의 초상화>가 전시돼있다. 청결하면서 예민해 보이지만, 왠지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외국의 한 젊은이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 예로센코는 러시아 청년이다. 예로센코는 크로포트킨의 제자인데, 그를 ‘시인의 아이’의 주인공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음울한 표정의 깊은 분위기는 ‘시인의 아이’ 범주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예로센코는 러시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적인 종교인이었던 부모들은 예로센코가 4살 때 홍역을 앓자 아이를 교회로 데리고 가 정교회의 기도형식대로 아이의 눈에 무리하게 ‘성수(聖水)’를 뿌렸고, 아이는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었다. 더 이상 세상의 빛을 못 보게 된 아이는 모스크바 맹인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그의 연주가 발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중산층 청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예로센코는 에스페란토어를 익혀 영국 유학길에 나섰다.
음악 공부보다는 제정 러시아의 군사주의적 억압의 분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이 진정한 이유였다. 런던에서 예로센코는 크로포트킨의 제자가 되었다. 크로포트킨에게서 “진화란 상호 경쟁이 아닌 상호 사랑으로 인해서만 진행된다”는 것을 배운 예로센코는 영국 경찰에 의해 ‘불온 인물’로 분류돼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고, 때마침 일본으로 가게 돼 도쿄맹(盲)학교의 청강생이 됐다. 그리고 그는 크로포트킨을 흠모했던 일본의 진보계 인사와 친하게 지내다 인도의 타고르, 한국의 아나키스트 정화암(鄭華岩) 등 동아시아의 여러 명사와 교유하게 됐다.
훗날 러시아로 돌아간 예르센코는 해외 에스페란토 대회 참가 기회를 이용해 서구로 망명할 수 있었지만, 소련 오지의 소수 민족 맹인 청소년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고생의 길을 택했다. 예로센코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사용되는 투르크멘어의 점자를 개발했고, 빈곤하게 살다가 암으로 생을 마쳤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풀 냄새를 맡는 것을 행복해했고, 1950년대 후반 일본의 진보계 친구들은 ‘착한 사람 예로센코’의 묘비를 세웠다.
고향의 풀 냄새를 사랑했던 아나키스트 예로센코의 초상화는 지금도 도쿄미술관에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는 시력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문학적·혁명적 활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으며, 그 주장을 실천하며 살다가 세상을 떴다. (*예로센코 이야기는 <한겨레21> 2004년 9월 14일 ‘박노자의 착한 사람 예로센코’를 참조한 것임)
‘시인의 아이’는 바로 이런 것이다. 순진하고 명료한 의식으로 어떤 것의 노예도 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진영의 말은 절대로 듣지 않고, 맹목적인 열정의 노예가 되어 엄청난 욕설로 댓글을 달고 있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크로포트킨은 말한다. 화가가 단지 논밭의 풍경을 바라만 보거나 상상을 하고, 한 번도 논밭에 들어가 노동의 즐거움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들판에서 일하는 시적인 정경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고작 철새들이 날아가던 중에 높은 하늘에서 보는 정도밖에 전원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없다고. 젊은 청춘의 활기로 새벽에 쟁기를 끌고 나가 건강한 사람들 곁에서 긴 낫으로 건초를 베는 즐거움을 모른다면 어떻게 그 건강함을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땅과 그 위에서 자라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붓으로 그린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 땅에 봉사할 때, 땅에 대한 사랑이 가득할 때라야 얻을 수 있다. 그래야 힘찬 기운을 얻을 수 있다. 그런 힘찬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값진 삶이다. 누구를 미워하는 열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진한 마음으로 사는 ‘시인의 아이’와 같은 삶. 오늘의 우리가 돌아봐야 할 모습일 것이다.
임순만 작가·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
저작권자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 많은 기사는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벌 해양조약 비준 동의안 국회 통과, 남은 과제는? (0) | 2025.03.17 |
---|---|
지속가능한 급식으로 환경보호 앞장서는 나라들 (0) | 2025.03.13 |
디지털 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0) | 2025.03.13 |
달리면서 기부도 하는 착한 마라톤 대회 '눈길' (1) | 2025.03.12 |
"약물 중독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미국의 '치료와 재활' 정책 (0) | 2025.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