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이 2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전날 발표된 부당대출 검사 결과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IBK기업은행
[이코리아] 지난해 은행권을 뒤흔들었던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까지 번졌다. 약 90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에 현직 임직원이 연루된 사실이 적발된 데다 조사 담당 부서에서 이를 은폐하려 시도한 정황까지 드러난 만큼 김성태 행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기업은행·빗썸 등 금융기관의 이해관계자 등과의 부당거래에 대한 검사사례를 발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기업은행에서는 총 58건, 882억원의 부당대출이 적발됐는데 이 가운데 약 90%가 퇴직자 A씨와 관련된 것이었다. 기업은행에서 14년간 근무 후 퇴직한 A씨는 부동산시행업 등을 하며 지난 2017년 6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총 51건, 785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았다.
A씨는 기업은행 현직 심사역이었던 배우자를 비롯해 심사센터장·지점장이었던 입행 동기, 사모임, 거래처 관계 등을 통해 친분을 쌓은 임직원 등 총 28명과 공모하거나 도움을 받아, 대출관련 증빙, 자기자금 부담 여력 등을 허위로 작성하고 심사역 등 은행 임직원은 이를 공모·묵인하는 방법으로 부당배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부당대출과 관련된 임직원 8명은 A씨로부터 총 15.7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직원 2명의 배우자는 A씨가 실소유주인 업체에 취업하는 방식으로 장기간 급여 명목의 돈을 받았다.
또한 부당대출 관련 임직원 10명을 포함해 총 23명이 A씨로부터 해외에서 골프 접대를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A씨는 지난 2021년 본인 소유 지식산업센터를 기업은행 점포 입점 후보지로 추천했다가 은행 내부에서 부적합 판정이 내려지자, 고위 임원 B씨에게 청탁해 결국 판정을 뒤집고 2022년 점포를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B씨는 A씨로부터 장기간 국내외 골프접대를 받아왔으며, B씨의 자녀도 A씨 소유 업체에 취업한 것처럼 꾸며 2년간 6700만원을 받았다.
기업은행이 비위 사실을 알고도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A씨 및 입행동기 등의 비위행위를 제보받고 9~10월 자체 조사를 통해 부당대출·금품수수 등의 사실을 인지했으나, 금품수수 조사를 담당한 부서가 조사 내용을 부당대출 조사 담당 부서에 전달하지 않아 금감원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부당대출 조사를 담당한 부서는 지난해 11월 여러 사고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순차적 분할감사를 실시하고 각 감사 대상의 감사 배경을 다르게 기재하는 등 금융사고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방안이 담긴 별도의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부서는 이 문건에 담긴 방안을 지난해 12월 실제 실행한 뒤, 12월 26일 사고발견 경위를 허위로 기재하고 일부 부당대출 및 금품수수 내역을 누락한 채 금감원에 금융사고를 허위·축소·지연 보고했다.
또한 금감원 검사 기간인 올해 1월 16일 부서장 지시로 해당 부서 직원 6명이 금융사고와 관련된 271개의 파일 및 사내 메신저 기록을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검사를 방해한 정황도 적발됐다.
현직 임직원이 부당대출에 연루된 데다 조사 담상 부서가 사건을 은폐하려 시도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김성태 행장 등 현 경영진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올해부터 금융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가 본격 시행된 만큼 자칫 기업은행이 책무구조도 적용 대상 1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금감원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무구조도 적용 여부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25일 브리핑에서 “은행권 책무구조도는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며 “(기업은행 부당대출은) 시행 이전에 발생한 건이라 책무구조도를 소급 적용해 페널티를 주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은행 조사 담당 부서가 사건의 은폐·축소를 위해 관련 자료를 삭제한 것은 책무구조도 시행 이후인 올해 1월인 만큼, 책무구조도가 적용돼 최고경영자(CEO) 및 관련 임원에 대한 징계가 논의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이르다.
한편, 기업은행은 26일 기업은행 본점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전날 발표된 부당대출 검사 결과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IBK 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김성태 행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일로 기업은행에 실망했을 고객님과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금감원의 감사 결과를 철저한 반성의 기회로 삼아, 빈틈없는 후속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행장은 이어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도,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쇄신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IBK 임직원 모두가 ‘곪은 곳을 송두리째 도려내어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다’는 환부작신(換腐作新)의 자세로 업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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