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무역대표부 누리집
[이코리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현지시간 31일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부과 논의와 개인정보 보호법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다. NTE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매년 3월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하는 연례 보고서로, 미국 기업이 직면한 외국 무역 장벽과 이러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다룬다.
보고서는 전체 분량 중 약 7페이지를 한국에 할애했으며, 이 중 ICT 분야에서는 망 사용료, 개인정보보호법, 공공조달 암호화 요건, 클라우드 보안 인증, 위치정보 국외 이전 제한 등 5개 이슈에 대해 다뤘다.
우선 보고서는 한국 국회에서 발의된 다수의 법안을 언급하며 넷플릭스, 구글 등 외국 콘텐츠 제공업체(CP)에게 망 사용료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반경쟁적 요소를 띤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주요 통신사(ISP)가 자체 콘텐츠를 공급하기도 하는 구조 속에서, 외국 CP가 부담한 비용이 직접적인 경쟁사(ISP)에게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미국 재계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의 망 사용료 논의에 우려를 드러내왔다. 무역대표부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NTE 보고서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논의를 언급해왔으며 2022년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직전 한국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이며 한미 FTA의 내국민대우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아마존, 구글, 애플 등이 속한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도 “망 사용료 법안이 디지털 무역을 저해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망 사용료 논쟁은 지난 2020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 지불 여부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며 본격화되었으며, 2023년 12월에는 아마존이 보유한 글로벌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망 사용료를 이유로 한국 서비스 종료를 발표하는 등 관련 이슈가 이어져오고 있다.
국내 통신업계는 소수의 해외 콘텐츠 사업자(CP)가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대다수를 점유하며 한국의 인터넷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로 글로벌 CP는 국내 서비스 제공업체에 별도의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이에 더해 국내 콘텐츠 업계가 망 사용료가 K-콘텐츠의 수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인터넷 이용자 25만명이 연대 서명을 통해 반대 의견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찬반 의견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 구글 지도 갈무리
한편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위치기반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사실상 막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엄밀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도 및 위치 정보의 해외 수출에는 정부의 ‘개별 허가’가 필요하며, 2024년 말까지 단 한 건의 허가도 승인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USTR는 “교통정보, 내비게이션 등 위치 데이터를 활용하는 외국 기반 디지털 서비스들이 한국 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처럼 위치정보 수출을 제한하는 주요 시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서비스가 한국에서 일부 기능이 제한되거나, 한국 외 서버와 연동된 글로벌 지도 기능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지목된다. 실제로 구글은 2007년부터 국내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저장해 글로벌 지도 서비스와 연동하려는 요청을 반복해왔지만, 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구글 지도와 국내 토종 앱 간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국내 이용자의 선택권을 늘리며 해외 관광객의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데이터 반출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외국 서버로의 지도 데이터 반출이 안보에 직결되는 사안이며, 군사·보안 시설이 포함된 고해상도 지도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위험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고정밀 지도를 해외 기업에 내준다는 점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고서는 2023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됨에 따라 한국 개보위가 기업의 국내 매출이 아닌 글로벌 전체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국외 이전 제한이 데이터 저장 및 처리에 의존하는 서비스의 국경 간 제공에 장벽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공공조달 암호화 요건의 경우 한국 정부가 공공기관에 적용하는 암호화 기술로 자국 알고리즘(ARIA, SEED)만을 인정하고 있어 국제표준(AES)을 사용하는 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클라우드 보안 인증의 경우 외국 클라우드 사업자가 한국 정부의 보안 인증을 통과하려면 국내 인프라 분리, 자국 인력 운용, 한국형 암호화 알고리즘 적용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는 과도한 진입장벽이라고 주장했다.
USTR이 내놓는 무역장벽 보고서는 미국 무역정책 수립의 기초 문건으로 향후 FTA 재검토, 디지털 통상 협정, 보복 조치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통상 기조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보고서 발표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만큼 미국 수출업체들이 직면한 광범위하고 해로운 대외 무역 장벽을 인식한 미국 대통령은 없다.”라며 "행정부는 이러한 불공정하고 비호혜적인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공정성을 회복하고 열심히 일하는 미국 기업과 근로자를 글로벌 시장에서 우선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총 400여 페이지에 달하며, 가장 많은 분량은 중국에 50페이지 정도로 할애됐다. 이 외에도 유럽연합의 데이터 보호 규제, 인도의 강력한 데이터 현지화 정책과 전자상거래 규제, 일본의 통상·조달·서비스 분야의 비관세 장벽 등 세계 각국의 무역 장벽에 대해 미국의 입장에서 다뤘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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