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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임순만 칼럼] 서울법대가 위태롭다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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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의 헌법은 근대 헌법 중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1차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제국은 심각한 정치·경제적 혼란에 빠졌다. 황제 빌헬름 2세가 퇴위하면서 망명했고, 제국은 공식적으로 붕괴했다. 1919년 2월, 독일은 바이마르에서 새로운 헌법 제정 회의를 열고,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을 선포했다. ‘바이마르’라는 이름은 이 공화국의 헌법제정단이 처음으로 회의를 개최한 바이마르란 도시 이름에서 따온 것다. 공화국의 정식 명칭은 독일국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헌법을 통해 독일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국민 주권주의를 바탕으로 기본권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여성의 참정권과 투표권을 보장했다. 또한 자유 민주주의를 기초로 삼으면서도 재산권의 행사가 공공복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의 보장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사회권적 기본권 조항을 처음으로 헌법에 넣어 ‘복지 국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20세기 현대 복지 헌법의 전형이 되어 세계 많은 나라의 헌법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에서도 사회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이 오래가지 못한 것은 경제대공항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충격, 막대한 전쟁 배상금 지불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법부와 지식인의 부패에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물가가 수백 배 치솟아 오르고, 전 국민의 절반이 실업자가 되는 극도의 경제난 속에서 사법부를 장악한 우파 검사와 판사들이 극단주의로 치달아 공화국의 정치적 안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우파 법조인들은 우파의 중죄를 대부분 묵인하면서 좌파는 경미한 죄도 중죄로 처벌해 법의 공정성을 무너뜨렸다. 우파 범죄 354건 중 1건만 유죄를 선고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무책임한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고 흥미 위주의 보도에 치중했고, 지식인들은 침묵했다. 그 결과 히틀러가 이끌던 극우 나치당(NSDAP)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졌고, 독일은 1차전에 이어 세계 2차대전의 전범국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내 가슴 졸였던 것은 우리나라 검찰과 판사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검사와 판사를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윤석열의 내란을 겉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지지·옹호한 세력은 우리나라 최고 학부로 꼽는 서울대 법대 출신 인맥이다.

4일 헌법재판소가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문을 보면 법은 상식과 법리에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웅변하고 있다. 헌재는 윤석열 측에서 주장한 법 기술적인 절차 문제를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 위반, 포고령의 위헌·위법성,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시도, 정치인 체포 지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등 총 5가지의 탄핵소추 사유를 모두 인용하고,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행위 등에 대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라며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헌재의 선고에 앞서 거의 모든 헌법학자들은 윤의 행위가 명백한 헌법위반 및 내란이라고 계속적으로 지적했고, 오픈AI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도 “탄핵 인용 가능성이 약 90%에 달한다”고 예측했다.

사안이 이렇게 명백함에도 윤의 내란을 옹호한 주된 세력은 서울법대 출신의 정치인과 법조인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공직기강비서관 최강욱은 노무현재단 유튜브 ‘토요토론’(4월 5일)에서 “이제 ‘서울법대 내란과’라는 말은 시사용어가 돼 버렸다”며 서울법대 출신들이 없어진다면 이 나라의 30%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과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학부라고 꼽는 서울법대 출신 정치인·판사·검사들이 거의 모든 헌법학자들은 물론 인공지능까지도 지적하는 윤 내란 행위의 위헌 여부를 모른대서야 말이 아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알면서도 양심을 속이고 정의를 버리며 편향하는 것이다. 그들은 ‘최고 학부’라는 자부심을 품고 자기들끼리 상부상조하는 오래된 전통 속에서 ‘형님’ ‘동생’ 따위의 전화 몇 통화로 어려운 민원을 해결하면서 살아오는 동안 기이하고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그들은 이 쉬운 문제조차도 교묘한 법 기술을 통해 자신들 편향 인사의 중죄는 감싸고, 비편향적인 인사에 대해서는 10만원 짜리 법인카드 식사비용일망정 수백 번이 넘는 압수수색을 통해 기소하는 것을 ‘명수사’ ‘평판결’로 추어주는 해괴한 집단의 울타리를 치고 살아온 모양이다. 자기들의 반대파는 털릴 때까지 털어서 감옥에 잡아넣고,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는 채택하지 않고, 자기 진영의 사람은 아무리 중죄라고 기이한 판결로 풀어주는 것을 서울법대의 ‘특수함’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서울법대 출신 판사는 우리 사법부에서 70년 넘게 적용해 온 날짜 단위 구속 기간 계산법을 동문 권력자에게만 시간 단위로 바꾸어 윤을 풀어주라고 했고, 서울법대 출신을 수장으로 하는 검찰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즉시항고를 포기하며 즉각 동문 권력자를 석방했다. 이같은 ‘명판결’과 ‘명수사’가 관행이 되는 동안 저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아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헌재가 판단했음에도, 그런 판결을 무시하는 불법쯤은 자기들의 특권이라고 떵떵거리며 존재해온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뭐라고 해명할 수 있겠는가.

1923년 신채호는 일제 강점기에 나온 선언 중 가장 명문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선혁명선언’에서 이렇게 썼다.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 채우기, 단근질·채찍질·전기질(…) 등 야만 전제국의 형률 사전에도 없는 가진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옥문에서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될 뿐이다.”

일제하에서 이렇게 모진 박해를 받는 것은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 제 한 몸을 사르던 똑똑한 젊은이들의 행동양식이었다. 비록 세월이 달라져 똑똑한 이들이 더는 염세절망의 타락자나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양산되는 세월이 아닐지라도, 젊은이들이 국가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기본이며 인간의 영원한 양심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의 학업 우등생들은 자신들의 학업성적 우등성이 개인행동의 우등성으로 착각하고, 배타적인 의식을 고착화한 나머지 대부분의 헌법학자와 인공지능까지도 쉽게 예측하는 내란을 내란이 아니라고 옹호하며 보통사람들의 마음에 단근질을 해댄다는 말인가.

서울법대는 이제 겸손하게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동류들이 끼리끼리 모여 비틀린 의식으로 권력과 돈을 탐해온 것은 아닌지 묻는 시민들의 생각을 의식해야 한다. 자신들의 행동이 야심에 지배돼 사회발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사회에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검찰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맹자는 ‘양혜왕장구’ 하-11편에서 “(폭정하는) 임금의 목을 베어서 나라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 때에 맞춰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誅其君而弔其民 若時雨降 民大悅)”고 했다. 민심은 이렇게 무섭다. 그것이 천심이다. 대선 상대 후보를 “같잖다”고 드러내놓고 무시하면서 폭정을 일삼는 권력자와 그를 옹호하거나 그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이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임순만 작가·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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