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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봇물 터진 기후소송, 세계 각국의 사례는?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5.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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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략적 기후 소송에 관한 글로벌 워크숍, 제공-그린피스]

[이코리아] 시민이 직접 정부와 기업에 기후 위기 책임을 법적으로 묻는 재판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개인 또는 공동체가 원고로 나서 기후 위기의 책임을 따지는 ‘기후소송’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케냐의 라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허가를 무효로 한 소송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판결은 국가 발전사업 허가에 있어 기후변화 고려 의무와 공공 참여의 중요성을 국내에 적용한 사례로서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선례로 평가받는다.

재판을 진행했던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의 데일 파스칼 온얀고 변호사는 “화석연료 기반 대형 프로젝트가 환경법과 기후법 아래에서 왜 법적 정당성을 갖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개발 도상국에서도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이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의 보네르섬 주민들이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소송은 기후 정의와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법적 움직임의 상징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소송의 핵심은 정부의 기후 대응 미비로 인해 주민들의 생명권과 기본권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보네르는 2010년 네덜란드의 특별 자치구로 편입된 카리브해 섬으로, 네덜란드 본토보다 해수면 상승과 가뭄, 산호초 파괴 등 기후 위기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보호 조치는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주민들은 네덜란드 정부가 204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을 ‘제로’로 감축하고, 보네르를 포함한 카리브 지역을 위한 기후 적응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익 대표 자격으로 재판을 진행 중인 에프예 데 크룬 그린피스 네덜란드 활동가는 “이 사례는 단순한 환경 소송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기후 정의 실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기후 책임을 다룬 세계 최초의 공식 조사는 필리핀에서 시작됐다. 태풍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2015년 탄소배출 기업들을 상대로 필리핀 인권위원회(CHR)에 진정을 제기한 것이다.

2022년 필리핀 인권위원회는 이들 기업이 기후과학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청정에너지 전환을 방해함으로써 인권 침해에 도의적·법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들 기업이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무시하거나 은폐한 점을 지적하며, 피해자들의 생명권, 주거권, 식수권 등이 침해되었다고 결론지었다. 해당 조사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후 국제사회에서 유사한 소송이나 정책 변화에 중요한 선례가 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2024년 1월 헌법재판소에 첫 기후소송이 제기되어 심리가 진행 중이다. 대만의 환경권리재단(Environmental Rights Foundation)은 “2023년 발효된 「기후변화대응법(Climate Change Response Act)」이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 등 실질적인 감축 목표 없이 환경부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 주거권, 노동권, 재산권, 문화권 등을 침해한다”라며 “기후법과 헌법을 모두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2022년 정부의 기후 대응 정책이 불충분하다며 헌법적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이 진행됐다. 어린이, 청소년 등 미래세대가 주축이 되어 제기한 ‘청소년 기후소송’으로,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생명권과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이 “기후 위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미래세대가 오히려 정책 결정에서 배제되고 있다”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 대만 소송에서 원주민과 어린이, 노동자 등 기후 취약계층이 정부를 상대로 생존권을 주장한 점과 유사하다. 양국 모두 기후 위기를 ‘헌법적 권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의 실효성 없는 대응을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탄소중립 기본법」이 2031~2049년 감축 목표가 없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안긴다”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6년 2월 28일까지 국회에 입법 보완을 요구했다. 이 소송은 기후 위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헌법적 권리의 관점에서 다루며, 미래세대 보호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처럼 각국에서 제기되는 기후소송은 ‘기후 위기 대응은 인권 보호이자 헌법적 의무’라는 새로운 법적 인식을 전제로 한다. 특히 어린이, 원주민, 노동자 등 기후 취약계층이 직접 나서는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채혜진 그린피스 법무 담당자는 “이번 워크숍은 시민들이 법의 힘으로 직접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 자리였다”라며 “시민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 정의를 실현하는 기후소송의 흐름은 한국에서도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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