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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폐허 속에서 꽃피는 전쟁문화사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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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전 언론인.

 

전쟁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호메르스의 ‘일리아스’는 약 3,200년 전의 트로이전쟁을 다룬다. 희랍군이 트로이로 쳐들어간 지 10년째 되던 해, 희랍군의 최고 전사인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가멤논 왕에게 화가 나서 전투를 거부하고 전쟁터를 떠난다. 희랍군은 엄청난 위기에 처한다. 희랍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다 못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전쟁에 나선다. 그러나 결국 그는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에 패배해 죽는다.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터로 돌아간다.

 

드디어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전투가 전개되고, 마침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갑옷과 청동무구가 가리지 못한 부분, 쇄골이 어깨에서 나와 목을 감싸고 있지만 목구멍만은 드러나 있는 치명적인 급소에 창을 밀어넣는다. 아킬레우스가 말한다. “개 떼와 새 떼가 너의 육신을 보기 흉하게 찢게 될 것이다.” 헥토르가 죽어가면서 말한다. “내 그대의 이름과 어버이의 이름으로 애원하건대, 나를 개들이 뜯어먹게 내버려 두지 말고 내 시신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트로이인들이 나를 화장할 수 있게 해다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헥토르의 발 뒤꿈치 힘줄에서 복사뼈까지 뚫고 그 사이로 가죽끈을 꿰어 전차에 매단다. 그리곤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몬다. 헥토르의 머리를 땅에 끌려오도록 해 자신의 진영으로 온다. 헥토르의 늙은 아비는 아들의 시신을 찾아오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열이틀이 지나 노인이 아킬레우스의 진영에 찾아와 묻는다. “내 아들을 토막 쳐서 개들에게 던져 주었소?” 아킬레우스의 신하가 답한다. “노인장! 당신의 아들은 아직 개나 새들의 밥이 되지 않고 아킬레우스의 막사 사이에 처음 쓰러진 그대로 누워있소.” 

 

노인이 자기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 앞에 나아가 그의 무시무시한 두 손에 입을 맞추며 말한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차마 못 한 짓을 하고 있소. 내 자식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아킬레우스는 노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노인장!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자면 며칠이나 걸리겠소? 그 동안은 나도 쉴 것이며, 백성들도 붙들어두겠소.” 아들의 장례기간, 즉 휴전 열이틀을 정한 노인은 몸값을 주고 아들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온다. 아킬레우스는 적이지만 헥토르 아버지의 부정(父情)에 운다. 

 

죽은 장수의 다리를 전차에 묶고 머리를 땅에 끌고 오는 ‘일리아스’의 참혹한 장면은 1996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해 재연됐다. 모하마드 나지불라는 1987~1992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을 지냈다.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자 1990년 3월 국방장관 등이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이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1992년부터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나지불라는 정권을 잃었고,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무혈 입성했다. 탈레반 전사들은 한밤중 카불을 피해 달아나는 나지불라 전 대통령을 붙잡아 거세시킨 뒤 트럭 뒤에 매달아 밤새 대통령궁을 돌며 개처럼 끌고 다녔다. 그리고 날이 밝자 시체를 대통령궁 근처 광장에 매달았다. 

 

<2>

 

그리스 거장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은 발칸반도 현대사 100년의 비극을 담고 있다. 미국으로 망명한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A는 3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공식적인 방문 이유는 자신의 작품시사회 때문이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발칸반도 최초의 영화감독 마나키아 형제의 발견되지 않은 필름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가 방문하는 발칸반도는 오랜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하다. 

 

발칸의 여러 도시를 헤메던 A는 필름이 사라예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라예보로 가는 길에서 A는 한 여자를 만난다. 불가리아 태생의 여자는 전쟁의 비극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전쟁에 나가 죽은 남편의 옷을 A에게 입힌다. 그리고 남편의 옷을 입은 A와 사랑을 나눈다. 

 

사라예보에서 A는 마침내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남자를 만난다. A는 그에게 필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남자는 마침내 세 통의 필름에 대한 현상에 착수하고, 이 과정에서 A는 그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A에게 현상이 끝난 필름이 마르기까지 강가에서 산책을 하라고 권한다. 

 

남자는 안개 낀 날은 강가에서 축제가 벌어진다고 알려준다. 안개 낀 날은 저격수들의 총이 사람들을 쓰러뜨리지 못하기 때문에 인종과 국가와 종교가 다른 젊은이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안개 자욱한 강변에서 A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남자의 딸과 춤을 춘다. 그러나 이때 나타난 일군의 군인에 의해 남자의 딸은 살해된다. 현상된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는 A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A에게 죽은 남편의 옷을 입히고 사랑을 나눈 여자는 남편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의 행위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욕망이 함께 살아있었을 것이다. 안개가 낀 날은 총을 조준할 수 없어 사람을 죽이지 않기 때문에 각국의 젊은이들이 강가에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를 하는 장면은 전쟁문화사의 명 장면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춤추던 여자가 총에 맞아 죽는다. 전쟁은 어떤 꽃도 개화하지 못하게 하는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다.  

 

<3>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집권보수당의 부정부패를 견디다 못해 마을 청년들은 모아 반란에 나선다. 대령 계급을 고수한 사령관인 그는 서른두차례의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열네번의 암살기도와 일흔세번의 매복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그러다 그는 결국 정부군에 체포되었고 공개처형을 당할 처지에 몰린다. 감옥으로 그의 모친이 찾아온다. 

 

면회 시간 15분은 금방 지나간다. 아들은 야전 침대의 매트리스 밑에서 땀에 절은 종이 두루마리를 꺼낸다. 사별한 아내에게서 영감을 받아 틈틈이 적어놓은 시편들이다. “이걸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바로 오늘 밤에 화덕에 태워버리세요.” 노모는 그러마고 약속한 후 말한다. “권총 한 자루 가져왔다.” 아들은 보초가 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이렇게 답한다. “저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요. 하지만 가지고 나가시다 발각될지 모르니 제게 주세요.” 노모는 가슴에서 권총을 꺼내 야전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는다. 아들이 말한다. “작별인사 같은 것은 하지 마세요. 그 누구에게도 애원하지 말고 굽실거리지도 마세요. 오래 전에 제가 총살당했다고 여기세요.” 

 

총살형을 모면해 살아남은 대령은 다시 봉기를 일으킨다. 자신의 생가가 있는 마콘도 시의 시장인 보수파 장군 몬카다를 체포한다. 두 사람은 과거 전쟁을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수행하자는 공동 캠페인을 펼친 적이 있고, 휴전 기간에는 체스를 둘 만큼 친한 사이였다. 몬카다 장군은 마콘도에 선정을 베풀었다. 부엔디아 대령의 어머니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몬카다 장군을 처형시키기 위한 부엔디아 군대의 군법회의가 열릴 때, 부엔디아의 어머니는 혁명군 장교들의 어머니를 모아 몬카다 장군을 살리기 위해 법정에 증언하러 나간다. 여인들이 하나하나 몬카다 장군의 덕성에 대해 칭찬을 한다. 마지막에는 부엔디아의 어머니가 증언대에 선다. 

 

“우리는 여러분의 어머니이므로, 여러분이 제 아무리 혁명적으로 행동한다 해도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면 우린 여러분의 바지를 벗겨 매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아들의 반대노선에 서서 몬카다 장군을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모의 목소리가 법정을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판사들이 퇴정을 한다. 결국 몬카다 장군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날 밤 부엔디아는 사형수를 찾아간다. “이건 알아두게 친구. 자네를 총살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네. 혁명이 자넬 총살시키는 걸세.” 부엔디아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야전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던 몬카다 장군이 말한다. “그런 똥같은 소린 집어치우게 친구.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총살형은 자연사나 마찬가지이지.”

 

몬카다 장군은 끼고 있던 결혼반지와 목걸이, 안경, 시계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부엔디아 대령에게 말한다. “자네를 책망하지는 않겠네. 이것들을 내 아내에게 전해주게.” 부엔디아 장군은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한다. “이 물건들을 자네 부인에게 기꺼이 전해주겠네.” 

 

어느날 전투를 수행하던 부엔디아 군대가 몬카다 장군이 살던 고장을 지나게 된다. 부엔디아 대령은 몬카다 장군이 살던 마을에 들른다. 몬카다 장군의 미망인은 남편의 안경과 목걸이, 시계와 반지는 받지만 부엔디아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들어오지 마세요, 대령. 당신은 당신이 일으킨 전쟁에서는 명령할 수 있겠지만 이 집에서는 내가 명령해요.”

 

총살형을 앞둔 아들과 어머니의 면회 장면의 대범함은 보통 사람들로선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친구인 적장을 사형시키는 두번째 에피소드 역시 비정하다. 남편을 죽인 부엔다아에게서 남편의 유물을 받지만, 집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몬카다 장군 미망인은 의연하다. 복수하지 않는 복수야말로 전쟁의 문화사를 빛나게 한다.

 

<4>

 

인간의 역사를 한 두마디로 압축하자면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먹이를 찾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외부 적과의 싸움 이전에 공동체 내부의 싸움이 먼저였다. 분배의 결정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연결된다. 참정권은 그 전쟁에서 누가 이겼는지, 그 전쟁에는 누가 가담했는지의 문제가 핵심이다. 전쟁에서 진 자와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자는 당연히 분배의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이긴 자와 가담한 자는 그 몫만큼의 파이를 차지하는 것이 전쟁의 결론이다. 

 

현재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발하고 있는 전쟁들도 그 연원을 살펴보거나, 해법을 모색해본다면 결국은 이같은 공식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문화사는 전장의 총탄을 이기는 것이 많다.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의 문화사들, 기억해야 할 장면들, 특징적으로 각인된 장면들은 인간들이 치르는 전쟁이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오늘도 전쟁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세계인들의 연대와 전쟁문화사 역시 치열하다. 그 노력이 전쟁의 양상보다 치열하다면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순만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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