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지갑이 가벼워지고 있다. 삼성페이를 시작으로 카카오페이, 제로페이 등과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가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이른바 ‘탈 현금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 한편에서는 현금을 받지 않는 것이 금융 소외 계층과 디지털 취약 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인프라의 발달과 함께 카드 사용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조사한 2021년 전자 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2021년의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실적이 일평균 1,981만 건(6,065억원)으로 2020년 대비 건수 기준 36.3%, 금액 기준으로는 35.0%나 증가했다.
‘현금 없는 버스’도 등장했다. 교통카드를 사용해야 환승할인을 받을 수 있고, 요금도 저렴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교통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그러나 디지털소외계층이나 충전식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학생의 경우 요금을 낼 방도를 찾을 수 없어 난감할 수 있다. 현금 없는 버스는 현금 대신 교통 카드나 신용 카드, 또는 계좌이체로만 요금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21년 8개 노선을 시작으로 2023년 4월 기준 109개 노선(전체 버스의 25%)으로 확대되었으며, 대전광역시는 2022년 9월부터 모든 시내버스에서 현금을 사용할 수 없고, 청주시와 인천광역시 등의 일부 시내버스 노선에서도 현금으로 요금을 낼 수 없다.
현금 없는 버스가 많아진 것은 무엇보다 현금으로 시내버스 요금을 결제하는 승객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버스의 현금 이용 승객 비율은 2010년 5%에서 2022년 0.7%로 낮아졌다.현금 요금함을 유지 관리하는 비용도 문제가 된다. 서울시 시내버스의 경우, 현금 수입은 2020년 109억 원이었는데 현금 요금함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 없는 버스 뿐 아니라 ‘현금 없는 매장’도 늘어나고 있다. 키오스크(Kiosk)를 쓰는 매장은 점점 늘어나는데, 키오스크 주문에서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2018년부터 한국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서울에 있는 매장의 약 72%의 매장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다. 또한 가구 전문점 이케아는 2022년 9월부터 우리나라 모든 매장에서 현금을 받지 않고 있다.
매장 운영 측면에서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되므로 현금 사고 위험이 감소하고, 결제 및 정산 과정 간소화로 인력을 감축할 수 있다는 장점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은행이 보장하고 있는 ‘현금사용 선택권’ 개념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금 사용 선택권이란 소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급 결제 수단 선택 시 현금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탈 현금화 현상이 지속될 경우, 비현금 지급 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소외 계층이나 카드 발급이 어려운 청소년 등에게는 소비활동이 제약 등의 부작용을 가져온다. 그뿐 아니라 ATM 등 현금공급 창구가 축소되는 등 화폐유통 시스템을 약화할 수 있다. 실제 ATM 현황을 살펴보면, 2010~15년 기간은 ATM 설치 대수가 연평균 8.0% 증가하였으나 2016년부턴 1.4% 감소하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에 미국, 영국, 스웨덴 같은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국민의 현금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가운데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홍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금사용 선택권을 법적으로 도입하려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데, 메사츄세츠 주는 소매상거래에서의 현금결제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필라델피아에서는 현금결제거부를 금지하는 개정안이 2019년 발효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연준 홈페이지는 지급수단으로서 현금의 중요성, 현금 관련 조사연구 및 홍보영상 등의 자료를 게시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우체국 예산 지원, ATM 운영업체에 대한 감독 강화, 화폐유통시스템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관리할 수 있는 통합 관리 협의체 설치 등을 통해 국민들의 현금 사용 접근성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홈페이지에 ‘wholesale cash distribution in the future’ 섹션을 신설하여 현금 없는 사회 진전에 따른 대응 방안 관련 논의 내용을 게시하고 있다.
세계에서 ‘현금 없는 사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은 국민들의 현금 접근성 약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급결제서비스법」을 개정하여 예금규모가 700억크로나 이상인 상업은행에 대해 입출금 서비스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 역시 홈페이지에 ‘secure access to cash’ 섹션을 신설하여 현금 없는 사회 진전에 대응한 정부 노력을 게시한다.
한국은행에서도 현금사용 선택권 보장에 대한 포스터 및 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꾸준히 홍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현금 결제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현금사용행태조사 및 화폐사용 만족도 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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