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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매수’ 일색 증권가 보고서, 리서치 업무 독립성 보장해야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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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국내 기업들의 내년 실적과 관련해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증권가 내에서 지나친 낙관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곳 이상의 증권사가 전망치를 제시한 국내 상장사 304곳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총 245조947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전망치(157조4762억원) 대비 56.18% 늘어난 수치로, 증권가가 내년 국내 기업의 실적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특히,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눈에 띈다. 반도체 업종의 내년 실적 전망치는 매출 364조4789억원, 영업이익 44조7081억원으로 올해 전망치(매출 300조7634억원, 영업손실 2조4373억원)을 크게 뛰어넘는다. 삼성전자의 경우, 내년 영업이익 추정치는 34조527억원으로 올해(7조2354억원) 대비 5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기업들의 내년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증권가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11일 ‘50.6%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내년 영업이익 컨세서스가 과도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데이터 집계 기관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치를 모아 만든 상장사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2023년 대비하여 2024년 50.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라며 “물론 그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든 숫자”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이어 내년 상장사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50% 이상 증가하려면 ▲금융위기 직후처럼 세계 각국이 동시다발로 재정 및 통화 양측에서 대규모 부양책을 실행하거나 ▲코로나19 직후처럼 부양책과 더불어 대면 소비가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다가오는 2024년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지나친 낙관론이 증권가에 퍼지게 된 것일까? 강 연구원은 “분석의 전문성을 갖췄다는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이처럼 과도한 컨센서스가 형성된 이유”에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며, 과거 재직했던 회사에서 주식시장에 대해 하락 의견을 제시했다가 투자자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고 진땀을 흘렸던 경험을 소개했다. 

 

실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투자자들의 매서운 항의를 감수하면서까지 증시나 특정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는 쉽지 않다. 앞서 BNK투자증권은 지난 2021년 카카오뱅크 청약 당시 “현재의 시가총액은 기대감을 상회하여 선반영된 것으로 판단한다”라며 목표주가로 공모가보다 낮은 2만4000원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BNK투자증권은 하루 만에 해당 보고서를 증권사 보고서 검색 사이트에서 내려야 했다. 

 

최근에는 하나증권이 지난달 8일 에코프로 목표주가를 기존 55만5000원에서 42만원으로 하향 조정한 매도 보고서를 냈다가 곤욕을 치렀다. ‘배터리 아저씨’로 알려진 박순혁 작가를 지지하는 ‘박지모’(박순혁을 지키는 모임) 카페 회원들은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의 길을 가로막거나 뒤쫓으며 매도 의견을 낸 것에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매도 보고서가 증권사 영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애널리스트들이 소신껏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기업은 증권사의 분석 대상이면서 주식·채권 발행, 인수·합병(M&A) 등을 의뢰하는 고객이기도 하다. 자칫 매도 의견을 냈다가 해당 기업이 관계를 끊거나 매도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에 대한 정보 제공을 거부할 경우 증권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매수’ 의견 일색인 증권가 보고서 관행을 개혁하려면 리서치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월 증권사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의 객관성 및 신뢰도 제고 문제가 그간 오랜 과제였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금감원은 이미 지난 2월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애널리스트의 성과평가 체계 개선 등을 통해 (증권사) 리서치보고서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독립리서치회사(IRP)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힌 상태다.

 

독립리서치회사는 증권사 내 리서치센터와 달리 전문적인 분석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리서치알음을 시작으로 밸류파인더, 한국금융분석원, FS리서치, CTT리서치 등의 독립리서치회사가 출범했지만, 아직 제도권으로 편입되지 못한 상태다. 자본시장법 상 독립리서치회사는 금융투자업이 아닌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되기 때문.

 

다만 아직 보고서 유료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감이 커 이러한 시도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독립리서치회사나 증권사 리서치 센터가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기업의 입김과 관계없이 보고서만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야 하는데 시기상조라는 것. 

 

한편, 강 연구원은 내년 국내 증시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2024년 상반기 동안은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수정되는 과정에서 주식시장이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라며 “2024년 상반기 일정 시점까지 주식시장이 바닥 다지기를 진행한 이후 본격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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