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동성혼’이 다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신교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동성 결혼 합법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반면, 인권단체에서는 성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18일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소씨는 김용민 씨와 지난 2019년 결혼실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단에서 보험료를 내라는 처분을 받자, 소씨는 동성이라는 “실질적 혼인 관계인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단지 결합의 상대방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동성 동반자 관계를 국민건강보험법의 피부양자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는 헌법 제37조 제1항과 조화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의 피부양자제도의 취지를 몰각시킨다”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국가가 개개인의 동반자 관계에 개입해 구성원의 성별 차이에 따라 건강보험제도의 보호를 부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가치평가적 행동을 하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내밀한 성적 지향의 발현과 형성에 개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라며 “동성 동반자도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여 스스로 보험료를 납부할 자력이 없는 경우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대법원 판결, 동성혼 법적 인정을 의미할까?
개신교계에서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동성혼 합법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은 지난 19일 논평을 내고 “이 판례는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성경적 신앙과 창조 질서에 위배되며, 또한 한국 사회의 정서와 사회질서 유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교총은 “본 사안은 동성 커플에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귀결되어야 한다”라며 “사법부가 남녀 간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혼인 제도를 월권하여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을 용인하는 것을 잘못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해석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에 대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하여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은 건강보험이라는 특수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피부양자 인정에서의 형평성 유지에 관한 것”이라며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경우 각 제도의 취지, 목적 등에 비추어 별도로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 또한 별개 의견을 내고 “우리 법제가 상정하는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전제하는 개념”이라며 “동성 간의 결합에는 앞서 살펴본 의미의 혼인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별개 의견을 제시했다.
◇ 동성혼, 가족제도 붕괴와 저출생의 원인일까?
대법원 판결로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동성 결혼 합법화 논쟁의 핵심은 가족제도의 정상성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다. 실제 건강가정기본법 3조 1항은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성 간의 결혼을 통해 구성된 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은 ‘건강’하지 못하며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는 의미가 내포돼있다. 실제 한교총은 이번 판결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에서 헌법상 사회질서 유지의 핵심인 남녀 간의 혼인으로 이루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저출생 문제도 동성혼 합법화의 반대 근거로 자주 사용된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할 경우, 자칫 저출생 문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것. 앞서 지난 2018년 열린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에서 대회장을 맡은 최기학 목사는 “동성혼이 합법화되면 가뜩이나 저출산이 국가 과제인데 남녀가 이루는 가정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 또한 지난 2022년 저출생 해결 방안으로 개신교계가 주장하는 ‘동성애·동성혼 치유회복운동’을 제시했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운동은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보고 ‘전환치료’ 등을 통해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동성혼이 가족제도 붕괴나 출산율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의 출산율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일관된 결과가 발견되지 않는다. 2000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의 경우 출산율이 합법화 직전인 1999년 1.65명에서 2021년 1.62명으로 소폭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 세계 출산율은 2.72명에서 2.27명으로, OECD 출산율은 1.69명에서 1.58명으로 하락했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 출산율이 전 세계 평균보다 완만하게 하락한 것. 게다가 네덜란드는 동성혼 합법화 이후 10년간 오히려 출산율이 올랐는데, 2010년 출산율은 1.79명으로 합법화 직전보다 오히려 0.14명 많았다.
2010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포르투갈 또한 2009년 1.34명에서 2021년 1.38명으로 오히려 출산율이 올랐다. 동성 커플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사회제도를 전혀 갖추지 못한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인 것 또한 동성혼과 저출생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근거 중 하나다.
동성혼이 가족제도 붕괴의 원인이라는 주장의 근거도 아직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동성 부부가 양육하는 자녀와 이성 부부의 자녀를 비교해도 신체적·정신적 건강 및 삶의 행복도 등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호주 연구진이 지난 2014년 315쌍의 동성 부부와 500명의 자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 부부의 자녀가 이성 부부의 자녀에 비해 일반적인 행동양상 및 건강, 행복도, 가족 간의 단합력 등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동성 부부의 자녀들은 이성 부부 자녀에 비해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 노출될 위험이 더 컸고, 이러한 사회적 낙인은 아이들의 정신건강 및 활동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동성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오히려 가족 붕괴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편견이 없다면 동성 가정에서도 건강하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는 것.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매우 소중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인권위는 “아직 갈 길은 멀다. 성소수자 동반자는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부양하고 있음에도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아, 동반자가 아파도 의사로부터 의료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환자 대신 치료를 결정할 수 없다”라며 “유족연금 수급권을 비롯한 상속, 장례, 재산분할 등 사회보장 및 여타 법률관계에서 법률혼 또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제반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어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성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없어야 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이를 크게 환영한다”라며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모든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영역에서도 행정적, 입법적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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