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만율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상 문제 중 하나다. 비만은 단순히 건강의 유지 문제를 넘어서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주요국을 중심으로 비만법 제정 등 각종 정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21세기 신종전염병’이라며 세계 10대 건강 위험 요인 중 하나로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도 비만 예방과 관리를 위한 법적근거 마련과 관련 정책추진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 지역과 미국, 호주 등에서는 20세기 말부터 인구 중에서 비만과 체중과다가 급증하고, 특히 최근 아동 비만이 더욱 빠르게 증가하면서 적극적인 비만예방정책들은 마련, 추진해 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비만이 사회적 질병으로 단순한 해결책만으로는 타개될 수 없다는 것에 궤를 같이 하고, 비만 대응을 위한 포괄적 접근과 다부문의 참여 및 파트너쉽을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동 비만정책의 경우 가장 선도적인 국가인 영국에서는 지난 2008년 1월 보건부와 교육부처가 공동으로 비만 대응을 위한 ‘Healthy Weight, Healthy Lives: A Cross-Government Strategy for England’라는 정부간 전략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2년마다 소아비만 관리계획을 발표하고 성인과 아동의 비만문제 해결을 위한 3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비만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호주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비만정책 ‘Healthy Weight 2008’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만 프로그램으로는 보건후생부 산하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서 주 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NPAO(the Nutrition,Physical Activity and Obesity Program), CATCH(Coordinatel Approach to Child Health)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비만과 관련해 법제도적 접근이 눈길을 끈다. 관련 입법 뒤에 문제 해결에 큰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소아비만 예방, 치료전략 개발 등을 위한 프로그램 및 예산지원의 법적근거를 마련했고, 현재 전반적인 비만 관리 및 감소를 위한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하원이 6월 '치료 및 비만감소법'을 통과시켜 비만약의 보험 급여시대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는 국가 전체의 비만정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 비만 예방과 관련하여 많은 주에서 건강한 식사와 신체활동을 장려하는 각종 입법 활동을 추진, 제정하고 있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각 지방정부에서도 비만대책을 다양하게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뉴욕주의 경우 데이케어 센터에서 제공하는 음료수를 저지방 우유, 물, 100% 주스 등으로 한정시키고 체육을 프로그램화 시켰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2014),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2017)에서는 탄산음료에 적용되는 소다세를 도입했다.
실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도입된 소다세의 일종인 ‘설탕세‘의 경우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공중보건학회에 따르면 설탕세 도입 이후 탄산음료 소비가 2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렇다면 비만과 관련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이미 1997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질병으로 지정했고 국내에서도 비만을 질병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구호는 많지만 현행법과 건강보험 체계 아래서 비만은 여전히 미용 문제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비만학회에서 주기적으로 발간하는 ‘Obesity Fact Sheet’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비만 환자는 한 번도 감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며, 특히 소아·청소년의 비만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초·중·고등학생의 비만율(과체중 포함)은 2017년 22.8%에서 2022년 26.1%로 상승하는 등 건강한 식습관 형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 5월에 발간된 질병관리청 공식학술지 ‘주간 건강과 질병(PHWR)’에 수록된 ‘지역사회 아동ㆍ청소년 비만 예방관리사업 역량강화를 위한 정책 제언’ 논문에 따르면 현재 국가 기관을 통해 다양한 아동·청소년 비만 예방사업 및 정책이 수행되고 있으나 한시적이고 분절적으로 실시되며 동일 대상으로 여러 주체가 중복적으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비만을 이러한 질환을 유발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생각하고, 비만에 대한 국가적인 대책은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일부 법률의 일부에 언급되어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2007년에는 서울행정법원이 비만의 질병성을 인정하지 않는 보건복지부 판단을 뒤집고 비만의 질병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는 않은 상태다.
논문 연구진은 “아동·청소년 비만 예방사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학교, 보건소 및 관련 기관 간 관리부서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한 정부 개입이 선행되어야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유기적인 운영 및 협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내 비만문제 해결을 위해 ‘비만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만기본법 제정을 통해 각 부처별로 파편화된 비만 관련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보건복지부 주도의 실태조사를 통해 비만치료 사각지대를 발굴하자는 것이다.
대한비만학회가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과 함께 ‘비만기본법(가칭)’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했다.
대한비만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만 19세 이상 성인의 비만율(체질량지수 25 이상)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성인 남성의 비만율은 47.7%에 이른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021년 기준 15조 6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연평균 7%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흡연(11조 4206억원), 음주(14조 6274억원)보다 검강보험 재정에 더 부담을 주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선제적인 정책 수립과 이에 따른 관리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비만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발생하기 쉬운 질병이 되고 있다. 대한비만학회에서 발간하는 ‘비만 팩트 시트’(Obesity Fact Sheet에서 지역별 비만 유병율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면 성인의 경우 ‘제주특별자치도’와 ‘강원특별자치도’의 비만 유병율이 가장 높았으며, 소아·청소년의 경우 ‘강원특별자치도’와 ‘충청북도’의 비만 유병율이 가장 높았다.
박정환 대한비만학회 대외협력정책이사는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비만 유병율이 큰 격차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 아직 체계적인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든 상태”라면서도 “결국 소득과 지역에 따른 비만 유병율의 차이는 ‘건강 평등권’ 혹은 ‘건강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만들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지방소멸’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비만학회는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하고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봤다.
박철영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은 “비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만기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비만의 국가기준을 명확히 하고, 국가 중심의 비만 예방 및 관리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국내 비만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가 진행돼야만 비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것”이라면서 “비만기본법 제정은 비만이라는 시한폭탄을 멈추게 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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