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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스마트폰 없는 학교,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자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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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앞의 생선.”

 

어쩌면 딱 이런 상황이다. 아동·청소년들의 스마트폰 문제 말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아동·청소년들에게 스마트기기 사용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의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 속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 또는 “그럴 것이다”일 터이다. 필자 역시 한 명의 부모로서 또 선생으로서 나에게 맡겨진 자녀와 학생들이 그렇게 해줄 것을 바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앞선 글에서 충분히 언급한 것처럼) 그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아동·청소년들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말랑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지난 십 수 년 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절제를 요구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날의 결과를 보면, 그간 우리의 접근이 얼마나 나이브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사랑하는 고양이들은 생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뇌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고양이들을 사랑했기에 또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기에, 그들을 통제하지 않고, 그들이 이 생선 저 생선 마음껏 손대고 돌아다니는 일을 허락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그런 결정은 (또는 결정하지 않음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어떤 고양이들은 자기가 가진 생선을 남의 것과 비교하느라 슬펐고, 또 다른 고양이들은 상한 생선을 먹고 아팠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시행착오는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제는 고양이들 앞에 모든 생선을 늘 차려놓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앞에서 일단 생선 매대를 치우고, 끼니때에 맞춰 그들에게 적절한 양의 건강한 생선 토막만 제공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이다. 

 

부모 또는 교사라면, 자신이 좋은 아빠, 좋은 엄마, 좋은 교사가 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그 ‘좋음’이라는 것이 그저 자녀/학생이 무엇을 원하든 일단 그것을 허락해 주고 보는 ‘방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안 좋은’ 어른이라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의 뇌를 보호하지 않고 방치해 온 나쁜 어른이 되어 버렸다. 

 

진정으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소위 ‘좋은 아빠 콤플렉스’와 같은 것들을 떨쳐내자. 자녀들을, 그들의 뇌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자. 

 

자 그렇다면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누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나서서 고양들이 앞에서 생선 매대를 치울 것인가?

 

답은 공동체이다. 각 아동·청소년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최소한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부모/교사들의 역할이다. 

 

필자는 교육 현장에서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 왔다. 자기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한 상황에서 나의 자녀에게만 스마트폰을 사 주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획일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부모들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부모의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 주는 시기가 늦어지거나 사용 시간에 통제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소유 문제를 각 가정의 부모들에게만 맡겨 놓는다면, 이는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주위의 모든 고양이들이 생선 매대를 마음껏 들락날락거리는데 한 고양이에게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고양이는 그것을 버텨 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심리적 박탈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숙제와 조별과제 등이 메신저로 이뤄지는 교육 환경에서 나의 자녀에게만 스마트기기를 사 주지 않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나의 교육 공동체에서는 스마트폰 문제를 각 부모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 부모들과 각 가정에게 지워진 과도한 짐을 모른 체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짐을 공동체가 떠맡는다. 공동체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규제를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부모들이 공동체의 규율을 지렛대 삼아 자녀들을 지도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자녀들 입장에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스마트기기 소유 및 사용과 관련된 문제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들어 충분히 교육하고 친절하게 설득한다면 우리의 자녀/학생들 중의 상당수가 그에 동의하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그들의 동의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다. 일상에서의 불편함도 당연히 따른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다시 말하자면 그들 주변의 친구들 역시 자신과 같이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고 있는 환경에 놓인다면, 절제에 따른 심정적 어려움에 대해 서로 공감하면서, 그들은 그 안에서 그들만의 놀이와 오락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필자의 교육 공동체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를 근거로 해서 공교육 현장에서는 이렇게 적용해 나가는 것을 제안한다. 프랑스나 대만의 경우처럼 법률로 아동·청소년들의 스마트기기 소유/사용을 제한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법 감정을 고려할 때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다. 그것이 과연 민주적인 방식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혁신 학교 제도를 통해서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는 학교를 소수 지정하여 운영해 보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겠다. 그런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원하는 부모들만, 거기에 동의하여 입학하는 학생들만 참여/도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학교에서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를 지켜본 후, 그 결과에 따라 다른 학교로도 조금씩 확장해 나간다면, 민주적이면서도 무리가 없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교육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가르치고 난 후에 피교육자가 배운 것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가 교육의 범위다. 그들이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기까지가 교육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가 함께 나서서 자녀들 스마트폰 규제에 조금씩 지혜롭게 동참해야 하는 이유이다.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이송용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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