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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후변화, 정신건강을 악화시킨다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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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네거리 전광판에 기온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재해, 경제적 손실, 감염병 확산, 기후난민 증가 등 다양한 위기가 발생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충격은 덜 조명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우울증 및 각종 정신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는 만큼, 대처 방안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부산대 의생명융합공학부 공동 연구팀이 최근 국제기분장애학회(ISAD) 공식 학술지(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온이 상승하면 우울증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지역사회건강조사(2021년)에 참여한 21만9187명을 대상으로 기온 상승과 우울증 간의 연관관계를 분석했는데, 거주지역의 연평균 기온이 과거(1961~1990년) 평년기온 대비 1도 높아질 때 우울 증상을 호소하는 응답률은 13%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는 입원이 필요한 상황까지 악화될 수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지난 2018년 국제학술지 ‘종합환경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2003∼2013년 서울·인천·대전·대구·부산·광주 등 6대 도시에서 있었던 폭염과 정신질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1년간 29.4℃ 이상의 폭염이 발생한 기간 정신질환으로 응급실에 입원한 16만6579건을 분석했는데, 이 가운데 14.6%가 폭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폭염으로 인한 정신질환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불안(31.6%)이었으며, 그 뒤는 치매 20.5%, 조현병 19.2%, 우울증 11.6% 등의 순이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며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적 뉴스 등을 접하며 우울 증상이 악화되는 간접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비롯해 그로 인해 자연환경과 사회에 발생하는 다양한 부정적 결과를 인지하면서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실제 영국 바스대학 연구진이 10개국의 16~25세 청년 약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걱정된다고 응답한 경우는 84%였으며, 이 가운데 59%가 심각하게 걱정된다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청년 중 50% 이상이 슬픔, 염려, 분노, 무기력, 죄책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겪고 있었으며, 45%는 기후변화로 인한 감정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폭염에 따른 체온조절 이상과 같은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더라도,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와 불안은 정신건강에 간접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장은 지난 8월 ‘보건복지포럼’에 기고한 글에서 “기후불안은 기후 시스템의 위험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적,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고조되는 것”이라며 “기후불안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고, 극도의 불안은 이차적인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불안을 정신보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심리학회는 이미 지난 2008년부터 태스크포스를 꾸려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기후불안 해소를 위해 정신건강 전문가가 추진해야 할 다양한 대책을 제시해왔다. 지난 2022년에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새롭게 제시하며 심리학 전반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연구를 늘리고, 기후변화 관련한 시민 대상 심리학 교육을 확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정신과의사협회 또한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공식 입장을 내고 “기후변화는 일반적인 공중보건, 특히 정신건강에 심각하고 점점 더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라며 “기후변화의 진행을 줄이고, 기반을 강화하며, 기후 관련 기상 현상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하기 위한 대응 계획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미국정신과의사협회 내에서도 기후변화에 관심이 큰 일부 임원들은 기후정신의학동맹(CPA)를 꾸려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병리와 관련해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기후인식치료사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기후불안은 아직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보기는 어렵지만 점차 그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는 추세다. 보사연이 지난해 7월 전국 19~65세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응답자는 93.3%, 불안하다는 응답자는 90.8%로 집계됐다. 

 

채 센터장은 “지금 국내 기후불안 문제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어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기후불안을 심각한 수준으로 경험하는 경우는 병리학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기후불안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 센터장은 이어 “적절한 수준의 기후불안은 오히려 기후변화 대응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라며 “지금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원동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국가와 지역은 기후위기 대응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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