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 문학계의 주변부에 있던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진입했다는 문학 평론가들의 많은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유종호 문학평론가, 정여울 작가 겸 문학평론가 등 많은 문학평론가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300만부 이상이 팔린 그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대체로 호평이지만, 반응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하나로 변방의 문학이 중심의 문학이 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문학은 철저하게 개인적 소산이고, 작가 개인의 문제의식이나 사상의 산물이지만 사회의 집단적인 의식과 미학, 역사와 사상, 문체와 형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번역을 통해 타 문화권의 독자들에게 알려지고, 노벨위원회의 예민한 심사를 거쳐 가려 뽑힌 작품이라는 점에서 수상 작가를 배출한 그 문화권 전체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상 작가는 물론, 그 문화권의 수준 높은 다른 작가들 역시 일정한 문학적 역량을 조명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림원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한강은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각의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시적이고 실험적인 산문의 혁신’은 현재 우리나라 많은 여성 작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서사 스타일이며, 이런 문장을 통해 역사와 현대문명 사이에 놓인 주인공의 심리적 분절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특징을 보여준다.
한강은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내면을 섬세하게 탐구하면서, 『채식주의자』에서 육식, 가부장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다뤘고,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는 5·18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이란 국가 폭력을 파헤치며 작가의 문제의식과 사상을 깊이를 심화시켜 왔다.
한국어 문학이 세계 문학계 최고 수준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데에는 무엇보다 서구-백인 중심의 서사를 소수 언어인 한국어를 통해 세계 문학권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는 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번역’이라는 문화권의 매개작용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뛰어난 서사와 창의성을 동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강이 개척한 이야기의 심층성과 상상력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백인-남성 서사의 중심이란 인류문명 최초의 작가로 일컬어지는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르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시작으로 플라톤, 단테 알레기에리,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미겔 데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볼트강 괴테, 레프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월트 휘트먼, 윌리엄 포크너 등으로 이어지는 서구 작가들의 그리스·로마 신화와 문명을 바탕으로 직조한 문학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흔히 통칭되었다.
『일리아스』는 문명사 최초의 전쟁으로 꼽히는 트로이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쳐들어간 지 10년째 되던 해 그리스군의 최고 전사인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가멤논 왕에게 화가 나서 전투를 거부한다. 그리스군은 엄청난 위기에 처하고, 그것을 보다 못해 아킬레우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참가한다. 하지만 그는 토로이의 영웅 헥토르에게 패배해 죽음을 당한다. 아킬레우스는 분노의 방향을 헥토르에게 돌리고 전장으로 들어가 친구의 원수를 갚고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자신의 진영으로 끌고 온다.
엄청난 신화와 에피스드가 백과사전처럼 무수히 피어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눈부신 장면은 아들의 시신을 찾으러 온 늙은 헥토르 아버지와 아킬레우스의 담판 장면일 것이다.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에게 아들의 시신을 내 줄 것을 부탁하며 말한다.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서 있는 그대의 아버지를. 그분은 그대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살아있는 아들이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것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차마 하지 못한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를 위해 운 다음 헥토르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아, 불쌍하신 분! 그대의 용감한 아들을 죽인 사람의 눈앞으로 혼자서 감히 찾아오시다니! 그대의 심장은 진정 무쇠로 만들어진 모양이구려.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자면 며칠이나 걸리겠소? 그동안은 전쟁을 중지하겠소.” 노인은 열하루를 요구한 후, 아들의 시신을 받아 적의 진지를 떠난다. 돌아온 노인은 절차를 갖추어 시신을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른다. 『일리아스』의 끝장면이다.
『오디세이아』는 토로이 전쟁이 끝난 후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10년간에 걸쳐 집으로 돌아오는 모험담을 담았다. 서양 문학사에서는 모험담의 원형으로 꼽는다. ‘오디세이’라는 말은 ‘긴 여정’ ‘방랑과 여행’ 같은 영어 단어로도 쓰인다.
서구문학은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서양문학자들은 그것을 ‘세계문학의 중심’이라고 말해왔다. 이 문명권 안에서 이야기를 확대·발전시켜온 것이 서양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중에서 이런 중심을 벗어나 제3세계 서사의 찬란함을 자랑한 작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콜롬비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투르키에 작가 오르한 파묵을 꼽고 싶다.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주인공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적장인 보수파 몬카다 장군의 이야기다. 몬카다는 부엔디아 대령의 생가가 있는 마콘도 시의 시장인데, 개혁파인 반란군 부엔디아 대령에게 체포된다. 두 사람은 과거 전쟁을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수행하자는 공동 캠페인을 펼친 적이 있고, 휴전 기간에는 체스를 둘 만큼 친한 사이였다. 몬카다 장군은 마콘도에 선정을 베풀었고, 부엔디아 대령의 어머니에게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몬카다 장군을 처형시키기 위한 부엔디아 군대의 군법회의가 열릴 때 부엔디아의 어머니는 혁명군 장교들의 어머니를 전부 모아 몬카다 장군을 살리기 위해 법정에 증언하러 나간다. 여인들이 하나하나 몬카다 장군의 덕성에 대해 칭찬을 했고, 마지막에는 부엔디아의 어머니가 증언대에 선다.
“우리는 여러분의 어머니이므로, 여러분이 제아무리 혁명적으로 행동한다 해도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면 우린 여러분의 바지를 벗겨 매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아들의 반대노선에 서서 몬카다 장군을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모의 목소리가 법정을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판사들이 퇴정을 하고, 결국 몬카다 장군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날 밤 부엔디아는 사형수를 찾아간다.
“이건 알아두게 친구. 자네를 총살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네. 혁명이 자넬 총살시키는 걸세.” 부엔디아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야전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던 몬카다 장군이 말한다. “그런 똥같은 소린 집어치우게 친구.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총살형은 자연사나 마찬가지이지.”
몬카다 장군은 끼고 있던 결혼반지와 목걸이, 안경, 시계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부엔디아 대령에게 말한다. “자네를 책망하지는 않겠네. 이것들을 내 아내에게 전해주게.” 부엔디아 장군은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한다. “이 물건들을 자네 부인에게 기꺼이 전해주겠네.” 그리고 장(章)이 바뀐다.
어느날 전투를 수행하던 부엔디아 군대가 몬카다 장군이 살던 고장을 지나게 된다. 부엔디아 대령은 몬카다 장군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가 살던 마을에 들른다. 몬카다 장군의 미망인은 남편의 안경과 목걸이, 시계와 반지는 받지만 부엔디아가 집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들어오지 마세요, 대령. 당신은 당신이 일으킨 전쟁에서는 명령할 수 있겠지만 이 집에서는 내가 명령해요.”
마르케스는 노벨상을 수상한 후 서양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후 세 시에 바라보는 카브리해의 황금빛”이라고 답했고,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비밀을 무덤 속까지 가져갈 수 있는 힘”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대단한 작가의 엄청난 이야기다.
오르한 파묵은 “내 영혼의 혼합체”라고 말한 장편소설 『검은 책』에서 자신의 글쓰기는 “우물로 샘을 파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한림원은 “파묵이 자란 도시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고 노벨상 선정 이유를 밝혔는데, 파묵의 서사의 집요함은 읽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힘으로 넘쳐났다.
사라진 아내의 행방을 쫓는 남자의 이야기와 그녀가 사랑하는 다른 남자의 칼럼이 한 장씩 교차하는 이 작품은 이스탄불의 우중충한 분위기를 집요하게 묘사하며 이스탄불이 얼마나 흥미로운 도시인지, 얼마나 슬픈 도시인지,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 놓인 도시 이스탄불의 병적인 갈등을 독특한 문장으로 묘사해냈다. 찰스 디킨스에게 런던이,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파리가, 제임스 조이스에게 더블린이 있었다면, 오르한 파묵에게는 이스탄불이 문학적 저력의 원천임을 보여준다. 이스탄불의 절망을 짚어내면서 이스탄불의 불꽃을 피워낸다.
한강의 일련의 작품들은 이런 세계적 작가들의 역량에 못지않다. 한강의 작품에 이르면 ‘세계문학의 보편성’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텍스트 속에 존재한다는 확신을 준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5월 광주’를 다룬 작가가 ‘제주 4·3’에서 실종된 가족들의 끈질긴 투쟁의 기록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기진한 상태로 배에서 내렸어요. 부슬비가 내려 부교가 몹시 미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천 명도 넘는 사람들로 선착장이 가득 찼는데, 총을 맨 경찰 수백명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줄 세웠습니다. 호송차 여러 대에 올라타는데 줄 뒤쪽에서 젊은 여가가 아니메, 아니메, 하고 울부짖었습니다. 배에서 숨이 끊어진 젖먹이를 젖은 부두에 놓고 가라고 경찰이 명령한 겁니다. 그렇게 못한다고 여자가 몸부림을 치는데 경찰 둘이 강보째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여자를 앞으로 끌고가 호송차에 실었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그 말 못 할 고문당한 것보다…… 억울한 징역을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 줄 맞춰 걷던 천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
한강은 감추고 덮어버려서 온전히 복원되지 않는 역사의 구조를 시적 이미지로, 분절된 토막토막의 문장으로, 으스러진 뼈를 맞추듯 맞춰나간다. 그래서 너무 잦은 시적 언어는 산문의 정신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의 응축력과 독서의 감응력을 높인다. 집을 떠나 다른 섬에 가서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부친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달된다.
“섬을 떠나 십오년 동안 아버지가 저 건너편을 지켜봤다고 엄마는 말했어. 어떤 밤에는 환하게 달이 뜨고, 그 빛을 받은 동백잎들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고. 어떤 새벽엔 마을길 가운데로 노루떼와 삯이 번갈아 다니고, 폭우가 퍼부으면 새로 생긴 물길이 이 냇가로 쏟아져 흘렀다고. 반쯤 불탄 대숲과 동백들이 다시 울창해지는 걸 그렇게 지켜봤다고 했어. 밤새 취침 등이 밝혀진 감방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면 방금까지 나무들이 있던 자리마다 콩알같이 작은 불꽃들이 떠 있었다고 했어.”
사망자가 2~3만명으로 추산되는 1948년 제주 4·3사건과 현 단계에서는 사망자가 몇만 명인지 추산되지 않는 1948년 10월 여수 순천 사건은 현대사의 대표적인 비극이다. 아무리 폭력에 의해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그 비극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밝혀내려는 사람들의 의지와는 작별할 수 없다는 한강 소설의 울림은 ‘노벨문학상 수상’, ‘세계문학 중심의 보편성’이라는 지구촌의 찬사로 돌아왔다.
임순만 작가 ·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임순만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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