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가사·육아 부담을 덜고 경력단절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독박 가사’ 문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는 저출산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희망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전국 13세 이상 3만5304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15~30일 2주간 시행된 이번 조사 결과,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52.5%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22년 조사 대비 2.5%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응답자 비중은 2010년 64.7%로 세 명 중 2명은 결혼을 당연한 삶의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른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혼 의향이 낮은 ‘미혼 여성’ 또한 2010년에는 46.8%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당연시하는 인식이 점차 낮아지면서, 2018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응답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 이하인 48.1%(미혼 여성 22.4%)까지 낮아졌다. 이후 결혼 의향은 50~52% 수준에서 크게 높아지지 못하고 있다. 미혼 여성의 결혼 의향 또한 2018년 22.4%에서 올해 26%로 높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혼인외출산이 터부시되는 한국에서 결혼은 출산과 직결되는 핵심 변수다. 그런 만큼 출산의 주체인 여성, 특히 미혼 여성이 결혼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을 알아보고 이를 개선하는 것은 저출산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다.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미혼 남성(38.0%)과 마찬가지로 ‘결혼자금 부족’(25.0%)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 다음으로는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가 뚜렷했다.
미혼 여성은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19.1%), ‘출산·양육 부담’(14.4%), ‘결혼생활과 일의 양립 어려움’(10.8%), ‘행동과 삶의 자유’(10.1%) 등을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꼽았다. 미혼 남성의 절반이 경제적 이유(자금 부족 38%, 고용 불안정 12.4%)를 꼽은 것과 달리 여성은 약 70%가 다른 이유를 꼽은 것.
가사 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쏠려있는 데다, 경력단절의 위험도 큰 상황에서 삶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사고다. 실제 한국의 가사 분담은 여전히 기형적인 수준이다.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 비중은 68.9%로 2010년(36.8%)에 비해 크게 개선됐지만, 인식의 변화에 비해 실질적인 가사 분담은 여전히 여성에게 치우쳐져 있다.
2024년 조사에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응답한 ‘여성’은 23.3%로 2010년(10.3%) 대비 2배 이상 높아졌지만, 여전히 5가구 중 4가구 이상에서는 ‘남편’보다 ‘아내’가 더 많은 가사를 담당하고 있다.
◇ 공평한 가사 분담, 출산율 제고 효과 있을까??
여성이 결혼을 비합리적 선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공식을 바꾸려면, 여성이 인식하는 결혼의 '이익'을 늘리고 '비용'은 줄여야 한다. 불공평한 가사 분담이 결혼의 비용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면 공평한 가사 분담은 저출산 해결의 실마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과 남성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할 경우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을까? 기존 연구결과를 보면 가사 분담은 출산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6년 발표한 ‘여성노동-출산 및 양육행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남편의 육아·가사 분담률이 1% 늘어나면 아내의 출산 확률이 0.0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1명인 여성의 둘째 출산 확률의 경우 남편의 육아·가사 분담률이 1% 늘어날 때 0.11% 늘어났다.
정은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최유석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2013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제시됐다. 연구진은 여성가족패널조사 자료를 통해 기혼여성의 둘째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조사했는데, 남편의 가사분담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남편의 자녀교육 참여도가 높을수록 둘째를 출산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연구결과도 마찬가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니케이) 신문이 지난 2019년 OECD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일본과 한국처럼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큰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처럼 아동수당과 육아휴직 등의 지원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공평한 가사 분담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캐런 에글스턴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실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 비율과 출산율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며 한국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비율이 스웨덴·덴마크·핀란드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에글스턴 실장은 “여성은 외부에서 일하는 시간이 남성보다 적고, 가사노동의 대부분(78%)를 담당하고 있다”라며 “가정 내에서의 평등을 이룰 수 있다면, 직장에서 성별 임금평등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가사 부담만 덜어주면 된다? ‘외국인 가사관리자’가 출산율 해법이 아닌 이유
일각에서는 여성의 가사·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부터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현재 100명 수준인 외국인 가사관리사 수를 내년까지 1200명으로 늘리고 송출 국가 또한 다양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으로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 확신하기는 어렵다. 이미 해당 제도를 도입한 해외 주요국의 경우 출산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관련 공개 토론회’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증가는 아시아 4개 국가에서 통계 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으며, 일본은 2017년부터 도쿄·오사카 등 6개 지역에서 해당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4개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가장 먼저 해당 제도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는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하락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는 지난 7월 열린 ‘서울시-정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대응 국회토론회’에서 “현재 정부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은 저출생을 핑계로 돌봄에 대한 공적 비용을 최소화하여 돌봄 부담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라며 “출생율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사·돌봄 노동의 분담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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