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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 실효성은?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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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야당이 제안한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에 나섰다. 합병·물적분할 등과 관련해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지만, 광범위한 주주이익 보호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는 상장법인이 ▲합병 ▲중요한 영업·자산의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분할·분할합병 등을 하는 경우, 이사회는 합병 등의 ▲목적 ▲기대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공시하는 등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될 예정이다. 

 

특히 최근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논란으로 문제가 된 합병가액 산정기준의 경우 비계열사간 합병뿐만 아니라 계열사간 합병에 대해서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완전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최근 주가만을 기준으로 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적용해 두산밥캣 주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금융위는 합병가액 산정 시 기존의 일률적인 산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하도록 하고, 모든 합병에 대해 외부평가기관에 의한 평가·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담을 계획이다. 

 

또한,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으로 인한 기존 주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모회사 일반주주(대주주 제외)에게 공모신주 중 20% 범위 내에서 우선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쪼개기 상장 시 거래소가 일반주주 보호 노력을 심사하는 기간 제한(5년)도 삭제된다. 

 

 

◇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 실효성은?

 

일반주주의 이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금융당국의 취지는 개인투자자들의 요청과 맞닿아있지만, 그 수단이 상법 개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점은 논란이 예상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당정이 요청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는 대신, 당정도 주주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회사뿐만 아니라 일반주주까지 명시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반면 정부는 야당의 요청과 달리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상장사를 포함해 100만개가 넘는 기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법 개정보다는, 상장법인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경영 위축 및 이사회 부담 가중 등의 부작용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적용 대상 법인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하고, 상법 개정으로 인해 모든 다수 회사, 상장법인이 아닌 비상장, 중소·중견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그동안 논의돼온 상법 개정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간 자본시장에서 일반주주 보호가 미흡했다고 하는 케이스들은 모두 재무적 거래 부분이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부 조항만 건드리는 ‘핀셋’ 개정으로 재계의 반발을 피해가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융위가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합병 ▲분할 ▲주식 교환·이전 ▲중요 영업·자산 양수도 등 네 가지 사항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최근 논란이 된 고려아연의 기습 유상증자나, HL홀딩스의 자사주 무상 출연 등의 주주가치 훼손 사례를 예방할 규제 대책은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반법인 상법 개정에 따른 광범위한 부작용을 우려했다고는 하지만, 상장법인에만 적용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는 비상장사 주주의 이익은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사실이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 시도가 그동안 당정 핵심 인사들이 상법 개정과 관련해 내놓은 지지 발언과는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이사회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액 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또한 지난 6월 자본시장연구원‧증권학회 주관 세미나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상법을 고쳐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일반주주 이익 보호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3일 논평을 내고 “자본시장법 개정방향은 결국 실체적인 개선 없이 절차적인 기준을 구체화한 핀셋규제에 그쳤다”라며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허풍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나 HL홀딩스의 자사주 재단 무상증여 등의 사례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같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고도화되는 갖은 편법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라며 “자본시장법은 자본시장의 공정성에 관한 법률이지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아니어서, 난데없이 자본시장법에 이사의 ‘노력’의무를 규정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법체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야당 또한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을 ‘땜질식 처방’이라 비판하며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할 뜻을 밝혔다. 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국장부활TF) 소속 의원들은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법 개정을 외면한 채 자본시장법 개정만을 추진하는 건 반쪽짜리 개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TF는 이어 “정부의 이번 방안은 구조적 문제 해결보다는 특정 사례에만 적용되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조치”라며 “자본시장법은 상법 개정을 대체할 수 없으며, 양 법안의 역할 분담을 통해 종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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