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베이
[이코리아] 소셜 미디어를 운영하는 기술기업들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온라인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에서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행동 강령을 체결하며 혐오 표현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규제 완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양국의 규제환경 차이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의 콘텐츠 검열을 줄이고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정책이 힘을 얻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삭제를 "보수적 목소리에 대한 검열"로 간주하며 이를 중단하기 위한 법적, 행정적 조치를 예고한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최근 팩트체크 프로그램을 폐지하며 비판받았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기존에 메타에서 진행되던 제 3자의 팩트체킹이 너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말하며,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팩트체킹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등 공화당계 인사들은 메타의 팩트체크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좌편향되었다고 비판해왔다.
구글 역시 검색 결과와 유튜브에 팩트체킹 기능을 추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EU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켄트 워커 구글 수석 부사장은 EU에 서한을 보내 EU가 요구하는 팩트체킹이 자사의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거나 효과적이지 않다면서 구글은 이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은 최근 미국 기업의 이러한 움직임이 전 세계에서 러시아의 허위 정보 캠페인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23일 본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러시아의 허위 정보 및 역사적 왜곡' 결의안을 채택하며 이와 같이 비판했다.
EU의 경우 미국과는 반대로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통해 온라인 혐오 표현을 포함한 불법 콘텐츠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서비스법은 소비자에게 안전하고 투명한 디지털 공간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안으로, 온라인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불법콘텐츠에 대응할 의무와 투명성 확보의 의무를 부여한다.
20일에는 구글, 메타, 틱톡, X 등 12개 주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온라인 혐오 발언 근절을 위한 새로운 행동 강령을 체결했다. 해당 강령은 소셜미디어 기업이 불법적인 증오 표현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비영리 또는 공공 기관인 '모니터링 리포터' 네트워크를 통해 모니터링을 진행하도록 허용하고, 신고된 혐오 게시물의 3분의 2를 최소 24시간 내에 조사하도록 한다. 또 불법적인 혐오 표현을 신고하는 절차에 대해 이용자들에게 안내해 인식을 높이는 등 온라인에서 혐오가 확산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막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마이클 맥그래스 EU 집행위원회 위원은 "증오와 양극화는 EU의 가치와 기본권에 대한 위협이며, 우리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훼손한다."라며 인터넷은 증오 표현의 부정적 영향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 차이가 벌어지면 결국 인터넷 환경을 분열시키고 이용자들에게 피해가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기업의 정책 변화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 공공 안전,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CNN은 이를 "갈라진 정보 생태계"라고 지적하며, 혐오 표현뿐 아니라 데이터 보호, 광고 규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규제 차이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사벨 라이트 전략대화연구소 책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미국과 다른 모든 서구 민주주의 국가 간의 정보 생태계를 엄청나게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짚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 오랫동안 존재해 온 언론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평행 규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결국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사이트의 콘텐츠를 감시하는 방법을 놓고 전 세계적으로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황이 되었다고 짚었다.
케이트 클로닉 세인트 존스 대학교 법학대학원 조교수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세계 민주주의에서 상충되는 법률이 생겨나고,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다."라며 사람들이 사는 곳의 법률에 따라 다른 콘텐츠를 보는 분열된 인터넷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인터넷 혐오표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가입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지난 2023년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가입 기업들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삭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 2019년 AI 기반의 악성 댓글 탐지 ‘클린봇’을 도입했으며, 카카오 역시 AI 기반의 '세이프봇' 기능을 활용해 다른 이용자에 불쾌감을 주는 메시지를 제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KISO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상 게시물과 댓글의 혐오표현 조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약 11%가 삭제 등 제한 조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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