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KB금융그룹이 지난해 연간 순이익 5조원을 돌파하며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핵심 자회사인 KB국민은행은 실적이 소폭 감소했다. 올해 금리인하 및 대출규제 등으로 은행권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이환주 신임 행장이 실적 반등을 위해 어떤 경영전략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지난 5일 KB금융은 지난해 5조78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10.5%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실적이다. 국내 금융회사 중 연간 순이익 5조원을 돌파한 것은 KB금융이 처음이다.
KB금융이 지난해 연간 순이익 5조원 돌파에 성공한 핵심 동력은 비은행 자회사의 선전이다. 실제 KB손해보험(8395억원, 전년 대비 17.7%), KB라이프생명(2694억원, 15.1%), KB국민카드(4027억원, 14.7%), KB증권(5857억원, 50.3%) 등은 지난해 실적이 크게 개선되며 그룹 실적을 견인했다.
반면, 핵심 자회사인 국민은행의 실적은 오히려 감소했다. 국민은행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3조2518억원으로 전년(3조2615억원) 대비 0.3% 감소했다. 국민은행 연간 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 2020년(△5.8%) 이후 4년 만이다. 4분기 개별 순이익은 6339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43% 줄어들었다.
국민은행 실적이 감소한 이유로는 지난해 초반 발생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가 꼽힌다. 시중은행 중 홍콩 ELS 판매 규모가 가장 컸던 만큼, 자율배상 비용 8620억원을 충당부채로 적립했기 때문.
홍콩 ELS 사태의 여파로 ‘리딩뱅크’ 타이틀 탈환도 당분간 뒤로 미뤄지게 됐다. KB금융과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하나금융에 따르면, 지난해 하나은행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3조3564억원(△3.5%)으로 국민은행을 약 1000억원 앞선다. 국민은행은 지난 2021년 연간 순이익 1위를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리딩뱅크’ 타이틀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홍콩 ELS 최다 판매사로 상당한 규모의 충당부채를 적립했음에도 2023년에 이어 3.2조원대 순이익을 기록한 만큼 국민은행이 악재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손실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1분기 국민은행의 순이익은 38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2%나 감소했지만, 이후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며 실적 감소 폭을 최소화했다.
건전성 지표 또한 여전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권 연체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국민은행의 연체율 또한 지난해 0.29%로 전년 대비 0.07%포인트 올랐지만,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0.32%로 직전년도(0.31%)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을 유지했다. 은행의 부실채권 대응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NPL 커버리지 비율은 202.5%로 전년 대비 23.1% 낮아졌으나, 여전히 200%를 상회하며 시중은행 중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다.
‘악재 속 선방’이라는 평가에 만족하기는 어려운 만큼, 올해 국민은행이 리딩뱅크 탈환을 위해 어떤 경영전략을 펼칠지 시장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일 취임한 이환주 신임 국민은행장으로서는 업황 악화 속에서도 수익창출력 강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올해 은행권 성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금리인하 추세로 인해 이자마진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대출 확대를 통한 기존의 성장 전략도 통하기 어려워졌기 때문.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경제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은행의 전략 변경 필요성’ 보고서에서 “향후 실물경제 성장률이 점차 낮아지고, 인구가 감소하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등 경제환경이 대출 비즈니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해 갈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금리도 하락세를 보여 대출의 수익성인 순이자마진도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점은 업황 악화 속에서 이 행장이 가장 먼저 내세운 목표가 ‘실적 성장’이 아닌 ‘신뢰 회복’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이 행장은 지난달 2일 취임식에서 “은행장으로 내정된 첫 출근길에 제가 ‘신뢰’ 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강조한 바 있다”며 “엄격한 윤리의식에 기반한 정도영업으로 ‘KB국민은행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고객이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지난해 국민은행을 강타한 홍콩 ELS 사태 및 각종 대형 금융사고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4일 지난해 정기검사 결과 국민은행에서 892억원, 291건의 부당대출이 취급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부터 책무구조도가 본격 시행되는 등 은행권 내부통제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신임 행장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해외법인의 실적 부진도 이 행장이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국민은행이 지난 2018년 지분을 인수한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현 KB뱅크)에는 현재까지 약 3조1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으나,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KB뱅크의 지난해 3분기 순손실은 2786억원(지배기업지분 기준 1861억원)으로 전년 동기(957억원) 대비 손실이 3배 가까이 불어났다.
국내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상태에서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은 국민은행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과제다. 경쟁사인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해외법인에서 4343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해외 진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국민은행도 지속가능한 성장과 리딩뱅크 탈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법인 실적을 반등시킬 필요가 있다.
이 행장은 취임사에서 “위기(危機)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위태로움(危) 보다는 기회(機)의 영역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며 “시선을 밖으로 돌려 ‘새로 고침’의 방식으로 오늘의 KB국민은행을 직시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워진 경영환경 속에서 취임한 이환주 행장이 국민은행의 ‘리딩뱅크’ 탈환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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