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픽사베이
[이코리아] 영국에서 지난 2023년 제정된 ‘온라인 안전법(Online Safety Act)’이 올해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강력한 시행을 촉구하는 의견과 법안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온라인 안전법은 아동이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아동 보호 조항’과 극단적 포르노, 테러 콘텐츠 등 불법 콘텐츠 차단을 강화하는 ‘불법 콘텐츠 규제 조항’으로 이루어진 법안이다. 법안에 따라 영국의 통신규제 기관 '오프콤'은 기업들이 이용자 연령 확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아동 및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조치를 시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또 법안은 온라인 플랫폼이 아동에게 성차별적 피해, 괴롭힘, 딥페이크 악용 등 특정 위험 요소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준수하지 않는 기업에는 최대 1,800만 파운드(약 306억 원) 또는 연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사안이 심각할 경우 사이트 차단 명령이 내려질 수도 있다.
해당 법안의 제정 배경에는 아동과 청소년을 소셜 미디어의 폐해와 인터넷의 유해한 정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영국에서 8세에서 17세 사이의 아동·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2시간에서 5시간씩 인터넷을 사용하며, 특히 청소년층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사실상 100%에 가까웠다. 또 이 과정에서 13세 청소년의 절반이 온라인에서 음란물을 접하는 등, 유해 콘텐츠 노출 위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폭동 당시 사진 = X 이용자 갈무리 @saikirankannan
또한, 허위정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온라인 안전법이 필수적이라는 여론도 높았다. 지난해 발생한 ‘영국 폭동’ 사태 이후, 온라인 안전법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었다.지난해 8월 영국에서는 소셜미디어 기반 허위정보로 촉발된 반이민 폭동이 발생했다. 사우스포트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의 범인이 무슬림 이민자라는 거짓 정보가 확산되면서, 극우 단체가 반 무슬림 시위를 조직했고, 전국적인 폭력 사태로 번졌다.
결국, 벨파스트, 달링턴, 플리머스 등 주요 도시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했고, 일부 난민 시설이 방화 시도 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용의자의 신원을 발표한 이후에도 잘못된 정보가 계속 확산되었으며, 영국 경찰과 정부가 가짜 뉴스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온라인 안전법이 허위정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소셜미디어의 유해 콘텐츠로 자녀를 잃은 유족 단체들 역시 온라인 안전법이 보다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현지 언론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소셜미디어에서 자해 및 우울증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접한 뒤 자살한 몰리 러셀(Molly Russell)의 아버지 이안 러셀(Ian Russell)은 영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안 러셀은 몰리 로즈 재단(Molly Rose Foundation)을 설립해 온라인 안전 규제 강화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안 러셀은 한 인터뷰에서 “7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몰리가 봤던 위험한 콘텐츠는 여전히 온라인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다”라며, 영국 정부가 여전히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족 단체들은 오프콤이 제시한 온라인 안전법 시행 방식이 지나치게 약하다고 지적하며, 더욱 강력한 연령 확인 시스템 도입과 플랫폼의 책임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테러 콘텐츠나 아동 성학대 콘텐츠뿐만 아니라, 자해 조장, 폭력 미화, 식이 장애 유발 콘텐츠도 신속히 삭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온라인 안전법이 과도한 규제이며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 안전법이 시행되면 인터넷 이용자의 연령과 신원을 확인하고, 안전을 위해 개인 간 대화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법안으로 인해 플랫폼이 요구하는 개인정보가 늘어나거나 암호화가 약화되어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법안이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된 개인 메시지를 감시할 수 있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왓츠앱, 시그널, 애플의 아이메시지 등 일부 소셜 미디어 서비스는 종단간 암호화를 적용해 메시지 내용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테러리즘 및 아동 성착취물 감시를 위해 이러한 암호화 기술을 일부 해제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에 대해, 시그널과 왓츠앱은 “영국 정부가 종단간 암호화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시, 영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중단할 수도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부과한다는 반발도 나온다. 빅테크 기업들은 기업의 법적 책임이 과도하게 무겁고, 실제로 모든 유해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X는 온라인 안전법이 '검열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으며 최근 팩트체킹 프로그램을 폐지한 메타 역시 커뮤니티 기반 검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법안 준수를 거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해외의 미국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협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Urban Dead 누리집
법안이 대형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작은 커뮤니티 사이트, 독립적인 블로그 운영자, 소규모 게임 개발자에게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영국에서는 현재 온라인 안전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소규모 커뮤니티 사이트, 블로그의 폐쇄가 이어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소규모 커뮤니티 LFGSS(런던 자전거 커뮤니티)는 법 시행 이후 포럼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영자는 “법안이 너무 광범위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또 20년 동안 운영되던 브라우저 게임 ‘Urban Dead' 역시 온라인 안전법 시행을 이유로 오는 3월 14일 폐쇄를 발표했다. 개발자 케반 데이비스(Kevan Davis)는 사이트 폐쇄 공지를 통해 해당 법안이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는 모든 소셜 및 게임 웹사이트에 적용되고, 단독 웹 프로젝트에도 기업 규모의 엄청난 벌금이 적용되기 때문에 브라우저 게임을 온라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오프콤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소규모 서비스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법 적용을 비례적(proportionate)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해명했다. 오프콤은 지난 1월 홈페이지에 게시한 안내를 통해 "온라인 안전법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는 서비스가 10만 개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가장 강력한 규제는 대형 플랫폼에 집중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소규모 커뮤니티 사이트나 개인이 운영하는 웹서비스의 경우, 위험 평가 결과가 낮으면 최소한의 조치만 요구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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