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지적하며 전기차·배터리 광물 등 첨단·핵심산업 품목 다수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대중 관세 인상 방안'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최근 리튬, 마그네슘 등 핵심 원자재의 제3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심원자재법(CRMA)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한국 이차전지 업계는 전기차 시장의 위축과 더불어 삼중고를 겪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미 대통령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관세인상을 지시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먼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25%에서 100%로 올해 4배 인상하기로 했다.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 관세도 연내 25%까지 올라간다. 중국산 반도체 관세는 내년까지 25%에서 50%로, 태양광 전지는 올해 50%로 상향한다. 이들 규모는 약 180억 달러로 대중 수입 제품의 약 4% 수준이다.
미 정부는 이번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해 “상당한 과잉 생산 리스크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보조금과 비시장적 관행 속에서 중국의 전기차 수출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70% 증가해 다른 곳에서의 생산적 투자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첨언했다.
미국은 앞서 중국산 철강, 알루미늄 관세도 현재 최대 7.5%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 때리기'로 노동자 표심까지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중국 제품에 대해선 60% 이상 관세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을 내비쳐왔는데, 당장 중국이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WTO 규정을 위반하는 일방적인 관세 부과에 일관되게 반대해왔으며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내 업계에서는 올해 1분기 미국에 수출된 중국산 전기차가 2000여 대에 불과하고, 태양전지 등의 미국 수출량도 매우 적어서 이번 관세 인상은 상징적 조치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전우제·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20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의식한, 꼭 필요한 미국의 첨단 육성 산업을 보호하는 의도로 해석된다”며 “전체 미-중 무역에서의 규모는 4%에 불과하며, 미국 수입 중 중국 비중은 전기차 1.8%, 반도체 3.8%, 태양광 0.1% 등으로, 전지(73.0%)를 제외하면 소비자에 직접적으로 부담이 가지 않는 품목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의 대중 관세 인상으로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원들은 내다봤다. 추가 관세가 부여된 산업 중 전기차, 배터리 셀, 태양광 기업들 외에 흑연, 라텍스 기업도 수혜가 기대된다는 의견이다.
전·이 연구원은 “미국 재무부는 지난 5월 3일 IRA 최종 지침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경점은 중국산 흑연이 들어간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에도 2026년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점”이었다며 “다만 유예기간 동안 비중국산 흑연 공급사 후보 선정, 비중국 흑연 공급처와의 장기 구매계약 현황, 계약을 완료한 비중국 흑연 공급사 소명 등 중국산 흑연을 대체하는 노력에 대한 철저한 증거를 미국 재무부와 국세청 2027년 1월 1일 전까지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비중국 흑연 공급사에 대한 러브콜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관련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인조 흑연을 생산하고 있는 포스코퓨처엠의 수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 금호석유, DL도 대중관세 정책으로 인한 수혜 기업으로 꼽았다.
다만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미-중 무역분쟁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글로벌 무역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결국에는 관련한 한국 산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20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25% 관세일 때도 중국차가 미국 진출을 전혀 못했다. 현재도 진입이 거의 불가한 상황에서 네 배를 올려 100% 관세 부과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고율 관세 정책이 유럽까지 확장되면 중국차는 동남아 등 제3세계로 빠지게 된다. 한국 역시 동남아 전기차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도리어 중국차와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광물 가운데 중국 생산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터리 음극재의 필수 광물인 흑연은 글로벌 시장 내 중국의 생산 비중이 80% 수준에 다다른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 수입 비중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 모두 95%를 넘어섰다.
김 교수는 “흑연은 2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전 세계 전기차 생산량의 약 90%가 중국산 흑연을 사용한 배터리를 탑재한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이를 대체하기 어렵다”면서 “우리나라 배터리를 공급 못 하면 미국의 빅3도 전기차 생산을 못 하게 된다. 연쇄효과로 인해 이런 관세 부과가 좋고 나쁘고의 개념이 아니라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최근 리튬, 마그네슘 등 핵심 원자재의 제3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제정한 핵심원자재법(CRMA)에 대응해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부품 제조 기업이 공급망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EU CRMA의 주요 내용 및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CRMA는 전기차용 배터리 및 부품 제조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공급망 다변화와 영구자석 및 제품에 사용된 원자재에 대한 정보 수집·관리 등을 위한 장기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CRMA는 지난 3월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가 공식 채택해 발효를 앞둔 법이다. 2030년까지 제3국산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기 위한 공급선 다변화 등을 규정한 것이 골자다.
EU는 지난 2016∼2020년 중희토류의 100%, 경희토류의 85%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등 핵심 원자재의 중국산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보고서는 CRMA가 우선 개별 기업·제품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역외산 제품 등에 대한 차별 조항은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전략 원자재에 대한 EU의 전체 소비량을 기준으로 목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이 법에 근거한 구체적인 이행계획 및 정책이 수립되면 실질적인 규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임현진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 선임연구원은 “특히 배터리 및 전기차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의 가공 및 정 제련공정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CRMA에 근거한 세부 제도 및 프로그램 설계시에 주요 정책대상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관련 품목의 가치사슬별 투입되는 원자재의 수입 지역 등을 사전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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