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올해도 동일인(총수) 지정을 피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 제도 관련 역차별 논란 해소를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오히려 재벌 규제를 완화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15일 ‘2024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매년 5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발표하면서, 이와 함께 동일인 지정 결과도 공개한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법인 또는 자연인을 뜻하는 것으로,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순환출자 및 사익편취 위험 등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공시·신고 의무가 부과되고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가 금지되는 등 강력한 규제가 적용된다.
이번 공정위 발표에서 눈길을 끈 것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였다. 김 의장은 쿠팡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지난 2021년 이후 동일인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 김 의장이 미국 국적이고 쿠팡의 모회사 쿠팡 Inc가 미국 법인이기 때문.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법적 근거가 없어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피하자,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정위도 동일인 제도 개선에 나섰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해 말 ‘동일인 판단 기준에 관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해당 개정안은 이달 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특수관계인과 계열사 간 출자·경영·자금거래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등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 단체 등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익편취 위험이 없다면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둔 것.
또한 예외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설령 외국인이라도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의 동일인 지정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해 계속해서 제기돼온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개선된 기준에서도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친족이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며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등의 동일인 지정 예외조건을 모두 충족시켰기 때문. 이에 따라 공정위는 자연인 김 의장이 아닌 법인 ㈜쿠팡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또한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도 올해부터는 송치형 회장 대신 법인인 ㈜두나무가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이 때문에 동일인 지정 기준의 모호함을 없애고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는 역할만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개정된 시행령과 그에 따른 이번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조치는 명백히 ‘쿠팡 특혜’ 시행령이자, 재벌 대기업집단 규제를 포기하는 행태이며, 향후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기업집단 ‘동일인 지정제도’는 한국의 고유한 제도인데, 그 이유는 한국에만 ‘재벌’이 있기 때문”이라며 “혈족이 그룹에 속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신분질서를 이루고 부의 대물림을 위하여 사익편취를 자행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기업집단의 ‘동일인’은 누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지에 관한 현실을 반영하여 지정하는 것이지, 당사자가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벌에게 동일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은 동일인 지정제도의 기본 취지와 재벌규제의 원칙을 스스로 몰각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재계는 아예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은 지난 9일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기업의 지배구조 자율성 확보를 위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 규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현행 대규모기업집단 규제는 과거 창업주 개인이 순환출자형 또는 피라미드형 기업집단 형태로 운영하며 경영권을 승계했던 폐해를 억제하기 위하여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ESG 공시 도입 등으로 기업의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강조되는 최근 경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라며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핵심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을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동일인 지정 논란에 대해 “동일인 판단기준에 대한 이번 시행령 개정은 국적 차별 없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을 명문화하여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의 명확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추진된 것”이라며 “특정 기업집단에 대한 특혜 등을 언급한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또한, 김 의장의 동생 부부가 쿠팡 Inc 소속으로 국내 쿠팡에서 파견근무 중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경영참여가 없다는 소명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김 의장의 동생 내외가) 이사회 참여나 투자 활동, 임원 선임 등 경영 참여 사실은 없는 것으로 소명을 받았다”라며 “쿠팡 주식회사와 김범석 의장은 시행령상 예외요건을 인지하고 있고 친족의 국내 계열회사 임원 미재직과 경영 미참여 사실 그리고 위반 시 동일인 변경 및 제재 가능성에 대해서 명확히 확인하고 서명을 한 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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