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다시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을 돌연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이 이미 DSR 강화를 통한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를 요청해온 만큼, 정부와 한은 간 정책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5일 “관계기관과의 협의 등을 거쳐 9월 1일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DSR은 차주가 보유한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이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차주의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금융위가 2016년 도입했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기간 중 금리상승으로 인해 원리금 상환부담이 증가할 가능성 등을 감안해, DSR 산정 시 일정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하여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이다. 금리상승을 가정해 대출한도를 더욱 보수적으로 산정하는 만큼 가계부채 규모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 2월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DSR 1단계를 적용 중인데, 2단계부터는 적용 대상이 은행권 신용대출 및 2금융권 주담대까지 확대된다. 또한 스트레스 금리 적용 비율도 기본 스트레스 금리(1.5%)의 25%(0.38%)에서 50%(0.75%)로 상향된다. 내년 초 시행 예정인 3단계의 경우 DSR이 적용되는 모든 가계대출에 대해 스트레스 금리 100%(1.5%)를 적용하게 된다.
정부는 당초 7월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시행 시점을 9월로 두 달 미뤘다. 이에 따라 3단계 시행 일정도 내년 초에서 내년 7월로 연기됐다. 금융위는 ▲서민·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대책’이 발표·시행되고, ▲6월 말부터 시행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성 평가 등 전반적인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 과정 등을 감안해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를 9월부터 시행하는 것이 해당 제도가 시장에서 연착륙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내려진 정부의 연기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규제의 ‘연착륙’을 위한 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최근 가계부채 확대 추세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5조4000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은 지난 2월(1조9000억원), 3월(4조9000억원) 두 달 연속 감소하며 안정되는 추세를 보였으나, 이후 주택거래가 회복되면서 4월(4조1000억원), 5월(5조4000억원) 두 달 연속 증가했다.
연체율 추세도 심상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0.40%로 전월 대비 0.03%p, 전년 동월 대비 0.06%p 상승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분기 기준 93.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 규모와 연체율이 모두 상승할 경우 리스크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DSR 강화 조치를 연기한 것에 대해 가계부채 대책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해부터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해 DSR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는 사실도 정부의 결정에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해 7월 발표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에서 “DSR 예외 대상 축소, DSR 시행 이전 대출에 대한 DSR의 점진적 적용 등 DSR 규제 정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DSR을 활용해 저금리 기조에서도 가계대출이 급격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했으며, 그 덕분에 가계신용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을 하회하게 되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점차 하락했다. 반면, 한국은 2018년 하반기에야 DSR을 도입한 데다 전세·중도금 등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오히려 가계부채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한은은 해당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대출을 DSR 산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한편, DSR 규제 도입 이전 이루어진 대출의 만기연장분에 대해서도 DSR을 점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가계 간 DSR 규제 형평성을 제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이행과정에서 DSR 상한을 초과하는 차주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해당 차주들의 대출상환 만기를 연장하여 신용경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되 가산금리 적용 등을 통하여 원리금 상환을 유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DSR은 단계적으로 DSR 적용 예외를 줄이고 가산금리를 높여 가계부채를 둔화시키기 위한 제도다. 정부의 이번 연기 결정은 DSR 강화가 가계부채 관리의 핵심이라는 한은의 주장과는 엇갈린다.
다만 한은은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미세조정’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26일 브리핑에서 “현재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고, 부동산 PF 구조조정도 진행 중인데 (이런 부분을 고려해 스트레스 DSR 시행 일정을) 미세 조정한 것으로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9월 1일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차질없이 시행해나가며, 유형별·업권별 가계부채 증가 추이를 밀착 모니터링 해나가는 등 가계부채를 GDP 성장률 범위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스 DSR 시행을 두 달 미루기로 한 정부의 결정이 가계부채 확대 추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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