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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엔저 장기화에 한국 수출 타격 우려... 사실일까?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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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개년 한․일․중 환율 추이.(2019년 1월=100) 자료=한국경제인협회

 

 엔화 약세 기조가 장기간 계속되는 가운데, 역대급 ‘엔저’로 인해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의 수출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추락하는 엔화, 전망과 대응’ 세미나를 열고 엔저 원인 및 국내 경제의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엔저 현상은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엔화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라며 “일본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이 가장 치열한 국가이므로 엔저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한 금융․산업 대응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엔화 약세는 지난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 엔·달러 환율은 1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161.72엔까지 올랐는데, 이는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여만의 최고 수준이다. 달러 강세에 원화 가치고 하락 중이지만, 엔저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원·엔 환율도 100엔당 850원대 수준까지 낮아진 상태다.

 

엔저가 이처럼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미·일 금리차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현재 5.25~5.5%로 일본(0~0.1%)과는 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버블 붕괴 이후 30년간 계속된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 장기간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해온 일본은 지난 3월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8년 만에 ‘플러스 금리’로 전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과 미국 간의 금리차는 상당한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이 물가안정을 확신할 때까지는 금리를 낮추지 않겠다는 입장인 만큼, 미·일 금리차가 단기간에 좁혀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이 금리를 빠른 속도로 인상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변정규 미즈호은행 서울지점 자금실 그룹장은 “일본은 국가부채 이자 증가 부담을 우려하여 기준금리 인상을 섣불리 할 수 없는 재정적 리스크가 존재한다”라며 “일본 국채 금리는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액 감액 등의 영향으로 상승 기조에 있으나, 미·일 금리차를 감안하면 엔화가 달러 대비 강세 국면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슈퍼 엔저, 한국 기업 수출 영향은?

 

문제는 엔저로 인해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강화될 경우 우리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엔화 약세와 한국경제 영향과 대응’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는 “최근 한국, 일본 및 중국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세 나라 통화가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라며, “일본 기업은 상품 단가를 엔화 가치가 절하된 폭만큼 낮추지 않고 있어 영업이익이 극대화되는 중인데 만약 원화가 엔화를 따라 절하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패널로 참가한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전문위원 또한 “한·일·중의 유사한 산업 및 수출구조를 고려하면, 3국 통화의 상관관계가 높아지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국내 산업 및 기업이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 와중에 슈퍼 엔저 장기화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엔·달러 환율이 오르면 우리 수출금액 및 물량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강내영 수석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엔화 환율 변동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한국의 수출금액은 0.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별로 보면 농수산물(△3.5%) 수출이 가장 크게 감소하는 반면, 반도체(△0.6%)는 엔저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시장에서의 한·일 수출경합도 추이. 2012년 이후 하락세로 전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한국무역협회

 

◇ 엔저 장기화, 비교우위 확보로 극복해야...

 

다만 한국과 일본의 수출경합도가 이전처럼 높은 수준은 아닌 만큼 엔저의 영향을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경합도(ESI, Export Similarity Index)는 두 국가의 수출구조가 유사할수록 경쟁 강도가 높다는 가정 하에 이들 국가가 특정 시장에서 직면하는 경쟁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두 국가의 수출구조가 완전히 일치해 경쟁 강도가 가장 높은 상태이면 수출경합도 지수가 1이 되고, 수출구조가 완전히 달라 경쟁이 없으면 지수가 0이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시장에서 한·일 수출경합도는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전환해 2022년 기준 0.458을 기록하며 10년간 0.22포인트 감소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0.486, 중국 시장에서는 0.414로 같은 기간 각각 0.013포인트, 0.078포인트 감소했다. 세계 수출시장에서의 한국과 일본 간 경쟁 강도가 점차 완화되고 있다는 것. 

 

물론 반도체처럼 상대적으로 한·일 수출경쟁이 심한 산업도 있지만, 한국의 비교우위가 확실한 만큼 엔저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반도체 산업의 한·일 수출경합도는 지난 2017년 0.498에서 2022년 0.530으로 상승하며 전 산업 평균치(2022년 기준 0.458)를 상회했지만, 오히려 이 기간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평균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은 환율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만큼, 엔저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수출 주력 업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연구원은 “엔화 약세 추세 속에서 우리나라 수출 주력 업종의 수출이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성 제고를 통한 비교우위 개선이 중요하다”라며 “비교우위는 생산능력과 R&D 투자와 정(+)의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수출증대를 위해서는 설비투자는 물론 R&D 투자 확대 등 생산성 제고를 위한 대책이 요구되며, 특히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R&D 등 수출지원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2일 세미나의 좌장을 맡은 정철 한경협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초엔저 양상이 심화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수출국이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되고, 일본에도 득이 될 것이 없다”라며, “초엔저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연구개발 등 수출지원 강화 노력이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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