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9일 오후 5시에 양천구에 말라리아 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지난달 18일 질병관리청이 전국에 말라리아 주의보를 발령한 데 따른 것으로, 경보는 주의보 발령 이후 첫 군집사례가 발생하거나 매개 모기 하루 평균 개체수가 시‧군‧구에서 2주 연속 5.0 이상인 경우 지역사회 내 유행을 차단하기 위해 내려진다.
이번 말라리아 경보는 양천구에서 2명의 첫 군집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이뤄진 조치다.군집사례는 말라리아 위험지역 내에서 2명 이상의 환자의 증상 발생 간격이 14일 이내이고, 거주지 거리가 1㎞ 이내인 경우를 말한다.
서울시는 양천구 군집사례 환자들의 추정 감염지역과 해당 지역 모기 서식 환경, 거주지 점검, 공동노출자, 위험 요인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심층 역학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말라리아 확산 방지를 위해 양천구에서 지역주민에게 문자 발송, 지역 의사회·약사회를 통한 홍보와 함께, 매개모기 집중 방제, 환자 조기 발견을 위한 신속진단검사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올해 신고된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지난 5일 기준 234명으로, 서울지역 환자는 43명(18%)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말라리아 발병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된다. 질병관리청은 말라리아 위험지역의 23주 차 최고 기온(27.3도)이 평년과 전년 대비 약 2도 높아져 모기의 활동이 다소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말라리아 매개모기가 잇달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말라리아 위험지역에서는 매개모기 방제를 강화하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예방수칙을 준수해 달라”면서 “특히 말라리아 위험지역 주민은 말라리아 의심 증상 발생 때 가까운 보건소 등 의료기관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기후변화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건강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WHO는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전 세계적으로 85개국에서 2억 4,900만 건의 말라리아가 발생했으며, 이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인 지난 2019년보다 7%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말라리아가 급증한 원인으로는 코로나19에 의료 역량이 집중된 점 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빈발이 꼽힌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는 질병 대응에 취약한 지역에서 발병 위험을 초래한다."라며 "지속 가능하면서도 탄력적인 말라리아 대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WHO는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에서 2050년 사이에 매년 약 250,000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인의 열 노출로 인한 사망이 38,000 명, 설사로 인한 사망자가 48,000명,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는 60,000명 등이다. 또 기후 변화로 인한 질병 부담은 주로 개발도상국의 어린이에게 집중되면서도, 다른 인구 집단 역시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기후변화로 위험성이 높아지는 질병은 말라리아 외에도 다수 있다. 올해 초 브라질 등 남미에서는 우기가 길어지며 고열을 동반하는 급성 열성 질환인 뎅기열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브라질 남부 상파울루 등 71개 도시는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11개 중남미 국가에서 뎅기열 사례가 급증했다. 브라질 보건부에 따르면 1월 1일부터 3월 19일까지 브라질에서만 193만 7,651명이 뎅기열에 걸렸으며, 이 중 6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박테리아가 상처에 침투하거나 오염된 어패류를 섭취하며 감염되는 비브리오 패혈증 역시 전 세계적으로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고위도로 확대되고 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 등 국제 연구진이 네이처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멕시코만과 남부 대서양 연안에서 주로 검출되던 비브리오 패혈증이 지난 30년간 해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위도 40도 부근의 필라델피아 부근까지 확산 되었다.
또 동부에서도 1988년부터 2018년 동안 감염자 수가 8배 정도 증가했다. 이에 더해 연구진은 2041년에서 2060 사이에는 비브리오균이 뉴욕 연안에서도 검출될 수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할 경우 위도 43도 부근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HO는 세계 각국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공중 보건에도 긍정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건강을 개선하는 활동을 촉진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 취약성을 평가하고 건강 계획을 개발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정부는 질병감시를 통한 선제적 기후위기 대비‧대응 체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4월 '기후보건 중장기계획(’24~’28)'을 마련해 선제적 기후위기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기후위기 적응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중장기계획은 미래 질병의 가장 큰 위협 요인 중 하나가 기후변화라는 인식하에, 질병관리청 차원의 효율적인 질병 감시와 기후위기 대비·대응으로 국민의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후 회복력을 증진하는데 중점을 두고 수립했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24~’28)의 추진계획을 담고 있는 이번 중장기계획의 비전은 「선도적 기후위기 대비‧대응으로 국민의 기후보건 회복력 증진」으로, 목표는 ‘질병 감시를 통한 선제적 기후위기 대비‧대응 체계 강화’와 ‘민‧관 및 글로벌 협력으로 기후위기 적응 인프라 구축’이다.
또 이를 위한 추진 전략은 ❶기후위기 선제적 감시로 기후-질병 경보기능 강화, ❷기후위기 대비‧대응체계 강화로 국민 건강보호, ❸ 기후위기 대응 민‧관협력 및 글로벌 네트워킹 강화, ❹기후보건 적응을 위한 과학적 인프라 구축의 4개로 구성되었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중장기계획의 효과적 이행을 위해 연도별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세부 과제별 예산 확보 노력과 추가과제 발굴 등 운영을 탄력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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