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팀코리아'가 체코 신규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국 원전이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유럽 원전 수주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체코 정부는 17일(현지시간) 내각회의를 개최하고 한수원을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했다. 이는 한수원이 체코 두코바니 5, 6호기 건설을 위해 발주사(EDU II)와 단독으로 협상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한수원은 지난 2년여 동안 한전기술,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과 '팀코리아'를 꾸려 수주전을 펼쳤다.
한수원은 1970년대 원전을 도입한 이래로 지난 50여 년 동안 국내외 36기의 원전을 지속 건설해 오며 축적한 기술로 ‘주어진 예산으로 적기에’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건설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적기 원전 건설을 원하는 체코가 한수원을 최적 파트너로 평가한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원전을 짓는 데 사용하는 1킬로와트(kWe)당 건설비는 3400달러로 프랑스의 건설비 7500달러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책정해 입찰에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팀코리아는 체코 원전 맞춤형으로 APR1000을 개발했는데, 최신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의 설비용량을 1400㎿에서 1000㎿로 조정한 것이다. 건설 단가는 9조원 안팎으로, 이번 수주전의 경쟁 상대였던 프랑스 EDF의 EPR1200(15조~16조원)보다 저렴하다.
팀코리아는 또 두산에너빌리티가 체코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를 통해 원전에 사용하는 증기터빈 생산이 가능한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체코는 기존 두코바니 원전과 테멜린 원전 부지에 최대 4기의 1200메가와트(MW) 이하급 원자로를 추가 건설키로 하고, 지난 4월 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로부터 최종 입찰을 받았다.
체코 정부에 따르면 체코 측의 총 예상 사업비는 1기 2000억 코루나(약 12조원), 2기 4000억 코루나(약 24조원)이며, 이 중에서 한수원과의 계약금액은 향후 협상을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한 한수원은 발주사와 세부 계약 협상을 진행하고 2025년 3월 최종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발주사는 이후 발전소 설계, 인허가 및 각종 건설 준비 절차를 거쳐 2029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브리팅을 통해 “우리의 세계 최고 원전 경쟁력이 세계시장에서 다시 한 번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 팀코리아 정신으로 함께 뛴 기업인들과 정부 관계자,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한국은 2009년 UAE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에 한국 원전기술 및 건설 역량의 우수성을 국제무대에서 재입증하게 됐다. 특히, 중동에 이어 원전 유럽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구축하게 됐다.
현재 체코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들이 신규 원전을 계획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과 더불어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인한 전력 수요의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 석탄발전소 부지에 원전 2기가 새로 지어질 예정인데, 올 하반기 타당성 조사를 거쳐 내년 또는 2026년 계약을 앞두고 있다. 네덜란드도 신규 원전 2기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르면 내년 하반기 입찰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한수원이 원전 설비개선 사업을 수주한 루마니아에서도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계획하고 있어, 추가 수주 가능성이 있다. 유럽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튀르키예 등에서도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체코 원전 수주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라는 우리 정부 목표 달성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체코 수주전으로 팀코리아가 향후 글로벌 시장 선점에 유리한 위치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1·4호기 중 우선 2호기만 수주한 것은 아쉽지만, 원전 2기의 수주금액은 24조원(174억 달러)으로 서프라이즈”라면서 “해외 건설 시 추가 비용 증가 우려가 있을 수 있던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예비비 등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며, 저가 수주 우려는 완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영향력이 큰 유럽지역에서의 수주 성공은 K-원전의 가격 경쟁력, 공기준수, 수입국의 원전 밸류체인 지원 능력 등이 정치적 영향력보다 우위에 설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향후 폴란드 2기 이외 UAE,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 추가 수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이정익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18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유럽 수출을 위해 그간 APR1000 개발을 성공적으로 잘 했고, 또 UAE에 지난 10년간 한국이 프로젝트 진행을 잘 한 실적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동유럽 국가들은 석탄화력 발전소 의존도가 높아 탄소중립을 위해 원자력도 많이 고려해야 되는 상황”이라면서 “대형원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현재 개발 중인 혁신형 SMR같은 원전들도 이번 체코 사업이 잘 끝나고 나면 연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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