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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0년째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 정치적 기원은?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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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때아닌 건국절 논쟁이 다시 정치권에 불을 지피고 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정치적 목적의 역사 논쟁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12일 서울 용산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뉴라이트라고 비판하는 광복회 및 야당에 대해 “여론몰이를 통해 마녀사냥하듯 인민재판을 벌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관장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해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관장은 지난해 12월 ‘자유민주를 위한 국민운동 행사’에서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된 것을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주장과 동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김 관장은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나는 건국절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며 “이미 2년 전에 ‘광복절이 있는데도 광복의 의미를 모르고 건국절을 제정하려는 주장을 하느냐’라고 뉴라이트들을 비판했다”고 강조했다. 

◇ 2006년 시작된 건국절 논쟁, 이·박 보수정권에서 논란 반복

 

‘건국절’은 이미 약 20년째 그 정당성을 두고 논쟁이 반복돼 왔다. 건국절이 이처럼 장기간 정치적 논쟁의 주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건국 기점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아니라 국가 정당성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기 때문이다. 

 

건국절 논쟁의 기원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뉴라이트계 인사의 대표격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전 교수는 “나에게 1945년의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 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라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라고 제안했다.

 

이후 뉴라이트재단·자유주의연대 등 5개 보수단체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내면서 건국절이라는 용어가 공론화됐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건국절 논쟁이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5월 뉴라이트계열 인사가 주축이 된 ‘대한민국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를 출범시키며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했고, 정갑윤 당시 한나라당 의원 또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한민국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 및 주요사업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출하고, 학계 및 독립유공자단체에서도 건국절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내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건국절 제정 논의는 결국 좌초했다. 정갑윤 의원은 발의한 법안을 철회했고, 기념사업위원회도 별다른 성과 없이 폐지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건국절 논란은 계속됐다. 2014년 윤상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광복절’을 ‘광복절 및 건국절’로 확대 지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다시 발의하는가 하면, 박 전 대통령 또한 2016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이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게다가 같은 해 11월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교육부는 ‘건국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은 1948년 8월 15일 건국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결국 2018년 역사교과서 최종 시안에 ‘대한민국 수립’ 대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으로 논란은 마무리됐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보수정권의 맥이 끊기면서 건국절 논란도 잠잠해졌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말해 건국 기점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시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건국절, ‘학술적’ 아닌 ‘정치적’ 논쟁?

 

이처럼 건국절 논쟁은 건국 기점에 대한 학술적 논의라기보다는 주로 보수진영 및 뉴라이트계열에서 제기한 정치적 논쟁에 가깝다. 보수정권에서만 건국절 제정 시도로 인한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시민단체나 학계, 독립유공자단체 등에서 건국절 제정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 또한 건국절 논의 배경에 놓여있는 정치적 지향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건국절 논쟁의 시발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글에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이후 경제발전을 이끈 이들에 대한 긍정이 담겨있다.

 

이 전 교수는 해당 글에서 “누가 이 나라를 잘못 세워진 나라라고 하는가. 누가 이 자랑스러운 건국사를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이었다고 하는가”라며 “내후년(2008년) 들어서는 새 정부는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60년 건국사를 존중하는 인사들로 채워지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건국절 제정 주장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건국절 제정은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친일파 및 개발독재 세력을 긍정하려는 시도라는 것. 

 

실제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14개 학회는 2008년 공동성명에서 건국절 지지 세력에게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워온 이들보다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라고 반문하며, “지난 60년 동안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사용해오던 ‘광복절’이라는 공식 명칭을 바꾸려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기념일이 지닌 역사성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임종명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 2019년 발표한 ‘건국절 제정론과 비(非)·몰(沒)·반(反)역사성’ 논문에서 “건국절론은 자신의 정치적·이념적 목표에 따라 이승만 등 1948년 8월 15일과 그 직후의 대한민국 주도 인물들을 ‘건국의 아버지들’로 소환해 그들을 자유민주주의자로, 또 그들의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표상했다”며 “문제는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주의자도, 민주주의자도 아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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