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로 인해 전기차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내연기관 차보다 화재가 발생할 확률은 낮지만 한번 화재가 발생하면 큰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보험업계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72건으로 내연기관 차량 화재(3736건)의 1.9% 수준이었다. 물론 내연기관 차량의 수가 전가치보다 훨씬 많은 만큼 화재 발생 건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체 차량 대수를 고려해도 전기차의 화재 발생률은 높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54만4000대로, 화재 발생 비율은 0.013%였다. 같은 방식으로 내연기관 차량(2518만9000대)의 화재 발생률을 계산하면 0.015%로 오히려 전기차보다 높았다.
이처럼 통계적으로 보면 전기차의 화재 발생 위험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크지 않지만, 전기차 화재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는 최근 발생한 대형 화재 사고의 영향이 크다. 지난달 1일 인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800여대의 차량이 타거나 그을리고, 주민들이 임시주거시설로 이주하는 등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
물론 해당 화재사고의 피해가 커진 것은 지하주차장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이미 확산된 전기차 공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내연기관 차량보다는 건수가 적지만 전기차 화재 사고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3건에 불과했던 전기차 화재 사고는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매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화재 사고도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불안감이 함께 커지게 된 셈이다.
게다가 전기차 화재의 경우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진압이 어렵다는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전기차 화재 위험 관리를 위한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전기차 화재 안전성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에 따른 화재 진압의 어려움 등으로 주차장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위험성이 비교적 크다”라며 “실제로 주차장, 차고, 전기차 운송 선박 등 폐쇄된 공간에서의 화재 발생과 피해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21~2023년 발생한 전기차 화재 중 ‘주차 중’(25.9%) 또는 ‘충전 중’(18.7%)에 발생한 화재가 44.6%이었다. 전체 전기차 화재의 절반 가량이 즉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2021년 미국, 유럽 등에서 발생한 122건의 전기차 화재 데이터 분석 결과 주차 중 화재는 47.5%, 충전 중 화재는 21.3%로 나타났으며, 독일에서 분석한 113건의 화재도 58%의 화재가 주차 또는 충전 중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기차 화재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해외 주요국들은 위험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미국 국가화재방지협회(NFPA)는 지난 2022년 NFPA 13(스프링클러 시스템 설치 표준) 개정을 통해 주차구조물에 대한 위험분류를 상향 조정하고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 방출 밀도를 약 30% 증가시켰다.
네덜란드는 지난 2021년부터 전기차 충전소 충돌위험 방지장치 설치, 배터리 화재 시 독성 연소 최소화를 위한 환기 시스템 도입, 화재 발생 시 대응을 위한 운전자 교육 등 전기차 화재 안전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도 2023년부터 엘리베이터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차장에서는 충전기 설치를 금지하고, 250㎡ 이상의 주차장에 대한 화재 예방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전기차 화재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는 만큼, 보험업계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1~2023년 발생한 전기차 화재 1건당 재산 피해액은 2342만원으로 내연기관차 피해액(953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보험연구원은 “전기차는 다른 연료유형의 차량에 비해 사고발생률은 낮지만 사고심도가 높아 손해액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전기차의 손해액이 전체 자동차보험료 상승을 통해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보험사들도 전기차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특약을 신설·확대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삼성화재의 경우 지난 8월 전기차 화재 사고로 자동차보험 대물배상 가입금액을 확대하려는 고객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대물배상 가입금액을 20억원까지 확대했다.
DB손해보험 또한 전기차에 한해 대물배상 가입금액을 최대 20억원까지 높였고, 현대해상도 개인용‧업무용‧영업용 등 모든 전기차의 대물배상 확장담보 특약 최대 가입금액을 20억원까지 확대했다.
KB손해보험은 지난 2021년 전기자동차 충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감전·화재사고로 인한 피보험자의 상해를 보장하는 특약을 신설했다. 또한, 배터리 소진 등으로 차량이 응급조치가 필요할 때 10km까지의 무상으로 제공한다.
보험연구원은 “전기차 화재와 관련된 위험요소를 구체적으로 평가해 자동차보험, 전기차 충전사업자 배상책임보험, 화재보험 등 보험을 통한 화재위험 관리 및 사고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라며 ▲단체 화재보험과 화재 예방점검 서비스의 연계 강화 ▲자동차 및 주택화재보험 결합상품 등 복합 보험상품 개발 등을 고려해 볼 것을 제안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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