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국내외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주력인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사들에 비해 선제적인 대응이 부족했다는 평가와 함께 비효율적인 조직을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오는 27일 회장직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이 회장이 이 자리에서 어떤 메시지를 낼까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따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내달 1일 회사 창립 55주년, 12월6일 반도체 사업 진출 50주년을 앞두고 있다.
앞서 21일 이 회장은 삼성이 2021년 고 이건희 선대회장 유지에 따라 시작한 소아암·희귀질환 지원사업 4주년 행사에 참석했으나 별도 발언은 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영업이익이 2분기 대비 13퍼센트 가량 하락한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이례적으로 반도체 수장의 사과문까지 공개하며 현재 위기 상황임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부쩍 제기된 삼성전자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주력 업종인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와 첨단 반도체 모두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는 AI 붐에 힘입어 엔비디아와 애플, AMD와 퀄컴 등 고객사 반도체 위탁생산을 사실상 모두 담당하며 파운드리 및 반도체 패키징 시장에서 독주체제를 굳건히 하고 있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를 포함한 삼성전자 비메모리 부문은 올해 3분기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매출은 2011년 14조2000억 원으로 TSMC의 매출액 145억 달러의 약 88%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TSMC의 25% 수준으로 줄었다. 2030년까지 세계 최대 파운더리 업체인 대만 TSMC를 따라잡겠다며 매년 15조원씩 투자하지만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 대만의 디지타임스는 지난 15일 삼성전자가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TSMC에 맞섰지만 수율 부진 같은 문제로 완전한 패배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또 인공지능 열풍을 타고 급증한 최첨단 AI 반도체 수요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처졌고, 삼성전자가 2019년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하는 실수를 범하면서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전자 위기설이 부각되면서 주가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1일 기준 삼성전자는 0.34% 하락한 5만9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외국인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을 두 달 가까이 12조6000억 원 가량 매도했다. 이러한 흐름은 반도체 정점론 속에서 삼성전자가 보인 3분기 실적 부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주가의 최근 약세의 배경 중 하나는 모건스탠리의 '반도체 시장 겨울론'이 거론된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의 수요 감소와 HBM(고대역폭메모리)의 공급 과잉 등으로 내년부터 '반도체 시장에 겨울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떨어졌다. 또 글로벌 투자은행인 맥쿼리가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하향 조정한 여파가 컸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리더십 부재가 더 크게 보이는 이유는 삼성전자의 의사결정 구조 문제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7년간 정현호 부회장이 이끈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의 영향력이 크고, 상층부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하부에서만 책임을 묻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삼성전자의 혁신과 빠른 대응이 저해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TF와 관련해 반도체 업계에선 과거 인텔의 전문경영인 출신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CEO 당시 의사결정 구조가 꼬여가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부 실무자가 위기의식을 느껴 보고가 올라가면 중간에서 사라지고,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등의 움직임의 정점엔 '재무통' 정현호 부회장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다.
삼성은 곧 ‘일류’라는 자긍심도 무너질 것 같다는 내부의 자조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최근 국내 한 대형 커뮤니티에 ‘삼성전자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서초동 라인 보고 예시’라는 삼성전자 블라인드 갈무리가 핫 게시글로 올랐다. 관련 삼성전자 블라인드 글에는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음? 다 알고도 돈주니까 다니는 줄 알았는데' '비단 서초뿐만 아님 기술팀장 보고만 해도 저런데 뭐' '저렇게 해서 중간 십상시들이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핵심 문제는 못 건드리게 해버림' 등의 직원들의 덧글들이 이어졌다.
전례 없는 위기론에 휩싸인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전영현 신임 반도체 부문장 임명을 단행했지만 변화가 적다는 지적이 많다. 인적쇄신이 부족했다는 점과 함께 삼성전자가 최근에 주목할 기술개발이나 새로운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수비적 경영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안팎에서는 조직 문화의 혁신과 더불어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체계 구축이 필요하며, 특히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사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특유의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는 지금껏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끈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의 위기가 국가 전체의 위기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KDI가 지난 2017년 발표한 ‘대기업 개별 충격이 우리나라의 거시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3대 기업(매출액 기준)의 개별 충격은 전체 직접효과의 약 59%를 설명하고 있었으며, 30대 기업으로 확대할 경우 그 숫자는 84%까지 올라갔다. 재계서열 1위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에 ‘노이즈’가 있다면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수출액은 약 150조원으로, 한국 전체 수출액 약 830조원의 18%다. 단순 지표로도 한국 경제의 1/5 가량을 책임지고 있다.
세계 일류를 추구하는 정신은 호암 이병철·이건희 전 회장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영철학이자 삼성의 DNA다. 이러한 DNA를 장착한 이 회장이 위기에 맞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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