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민원인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의 사례도 발생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코리아>는 악성 민원인에 대처하는 선진국의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았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에 따른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25일 국회 제출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은 담당자가 종결처리할 수 있는 문서의 범위를 확대했다. ▲민원내용에 욕설·협박·모욕·성희롱 등이 포함될 경우 ▲청원, 국민제안 등으로 접수·처리된 건이 민원으로 다시 접수되는 경우 ▲3회 이상 반복된 민원에 대해 내용이 동일하지 않더라도 그 취지와 목적, 업무방해 의도를 고려해 종결 처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전자민원을 반복 청구해 시스템 장애를 유발하는 민원인에게는 전자민원 운영기관의 장이 일시적으로 이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기존 민원처리법 시행령으로 규정했던 민원공무원 보호조치 관련 내용은 법률로 상향했다.
민원공무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게 된 계기는 지난 3월 도로 보수 공사 관련 민원에 대응하던 김포시 공무원 A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 사건과 관련있는 악성민원인 2인은 지난 4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상태다.
당시 김포시는 “지자체마다 이미 민원전담조직을 갖추고 진정·질의 등의 민원을 접수 중이었는데 정보공개 창구로도 이를 허용해 모든 부서 공무원이 무한책임을 떠안고 있고,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으로 끊임없이 제기하는 악의적인 정보공개청구에도 일일이 결재를 받아 답변해줘야 하는 등 공무들의 업무 가중과 사기 저하가 극심하다”며 법률 개정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사고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김포시청 관계자는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사고 이후 김포시청에선 공무원 보호를 위해 조직도에서 담당공무원의 이름을 삭제했고, 반복된 민원에도 전화를 끊지 못했던 것을 시차원에서 끊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5월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민원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말했지만, 행안부의 보호조치는 전국 읍·면·동 센터의 경우 ‘의무’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현장 민원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일선 공무원의 피해를 막는 데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행정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주요국의 경우 공무원에 대한 폭력을 유형화하거나 법령을 제정해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36개 주에서 공직자에 대한 방해·괴롭힘·위협 등을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하고, 일본은 악성민원을 ‘시간구속형’, ‘반복형’, ‘협박형’, ‘SNS·인터넷 비방형’, ‘성희롱형’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유형화해 놓았다. 행정 일선에서는 사설 경비원을 고용하거나 제압봉·최루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을 갖추고 대비한다.
영연방 국가들은 무관용이 원칙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악성민원인에게 행정서비스 접촉 횟수 및 시간을 제한하거나, 접촉방법 제한, 지자체 출입금지 등의 불이익을 준다. 또한 도서관과 레저센터 등 지자체서비스 사용을 제한한다.
법률로 공무원을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민원 공무원에 대한 인식 개선도 같이 가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행정연구원의 김세진 부연구위원은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한국공무원의 행정능력에 대해선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다르게 우리는 세계 1위 전자정부가 구축돼 있고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며 “민원공무원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한계가 있는데, 민원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민원인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공무원과 민원인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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