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위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드론을 띄우거나 접경지역에서 확성기 선전으로 악화되는 남북관계만이 아니라 한·미·일 vs 북·중·러의 파고가 심해지고, 우쿠라이나 전쟁과 11월 미국 대선 영향까지 맞물려 종래 평면적이었던 한반도의 위기가 점자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국면이다.
□ 북한·러시아 동반조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우쿠라이나를 방문한 2개월 뒤인 2023년 9월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해 정상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2024년 6월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총 23개조로 이뤄진 조약 제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자동군사개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양국 관계가 동맹에 준하는 관계로 격상한 것이다.
이 북·러 간 조약엔 1961년 조약에는 없는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과 러시아 국내법에 준하여’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엔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맹관계에 버금가는 내용이지만, 북러 쌍방의 국내법을 전제조건으로 달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동군사개입 조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조항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고 북한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고 있는 러시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북한과 소련 양국 간에 체결된 군사동맹조약은 1961년 7월 6일 모스크바에서 이뤄졌다. 이 조약은 유사시 군사적 자동개입을 명시했다. 북한은 이 조약 체결 이후 소련과 사이가 나빴던 중공과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그러자 소련은 1961년 11월부터 1964년 10월까지 군사원조를 철회했고 북한에 제공했던 차관을 다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외교적 충돌에도 동맹조약은 유지되다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해당 조약의 폐기를 요구했고, 1996년 9월 10일 폐기됐다.
러시아는 이번 북·러조약을 명분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북한 편에 서고 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은 한국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입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북한 주장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침략 행위가 발생하면 러시아는 조약에 따라 북한에 군사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러 간 밀착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서방과 대립 중인 푸틴 대통령은 영향력 확대와 군사적 자원 확보를 위해 북한의 도움이 필요하다. 유엔 제재 장기화로 만성적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도 ‘동병상련’인 러시아와 유대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북한과 군사협력은 주권적 권리라는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국제법에 저촉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주권적 권리라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을 통해 기대하는 예상 이득은 핵미사일 고도화, 고급 군사기술, 재래식 무기 현대화 등으로 이는 대한민국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라고 비판한다.
□ 한·우크라이나 협력 지원
2023년 7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손을 잡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수품 지원을 늘릴 테니 꼭 승리하라”고도 말했다. 우크라의 실지 회복을 비롯해 젤렌스키 '평화공식'도 지지했다. 젤렌스키의 평화공식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전범 처벌도 포함돼 있다.
그 이후 한국 정부가 겉으론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이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한다는 서방의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워싱톤포스트는 이달 4일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점검하는 특집 기사에서 “어떤 방식이었든 한국은 궁극적으로 모든 유럽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서방 국가들의 주요과제는 우크라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와 탄약을 제때 공급하는 것이 되었다. 우크라가 러시아의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꼭 필요한 게 155㎜ 포탄이다. 백악관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군사적 목적을 이루려면 월 9만 발 이상의 포탄이 필요하다고 계산했지만, 미국은 증산을 해도 필요량의 10분의 1 정도만 공급할 수 있었다. 미군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155㎜ 포탄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 물량은 국제적 금지 대상으로 포탄 하나에 작은 폭탄 수십 개가 들어간 집속탄이라며 공급에 반대했다.
미국 국방부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은 마음만 먹는다면 155㎜ 포탄 33만 발을 41일 안에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수 있었다. 다만, 한국에는 전쟁 지역에 살상무기 공급을 제한하는 법률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제안한 ‘간접적 방식’을 통해 한국이 올해 초부터 포탄 공급을 시작됐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은 모든 유럽 국가들을 더한 것보다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보낸 포탄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제공됐는지, 미국을 거쳐 갔는지, 미국이 자국 보유분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한국이 제공한 것으로 재고를 채웠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내용은 지난 4월에 미국 메사추세츠주 방위군 공군 소속의 잭 테세이라 일병을 통해 유출된 미국 국방부 ‘감청 문건’을 통해 일부 공개된 바 있다. 당시 문건에는 김성한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등이 2월 말께 포탄 33만 발을 폴란드를 통해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정부는 22일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한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및 참전과 관련, 북한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는 동시에 향후 러북 군사 협력의 강도에 상응하는 단계적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는 향후 단계별 상황 전개에 따라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까지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국가정보원은 지난 18일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내용은 △북한이 특수작전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 소속 4개 여단 병력 1만2000명을 러시아에 파병하기로 함 △1차로 1500명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 완료 △청진·함흥·무수단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 태평양함대 상륙함 4척과 호위함 3척 이용 △지금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블라고베셴스크 등지의 러시아 군부대에 분산돼 적응훈련 중 △러시아 군복과 무기를 받았고,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라티야 주민으로 위장하고 가짜 신분증을 받음 △조만간 2차 수송 작전이 진행될 것 △북한은 지금까지 컨테이너 1만3000개 이상 분량의 포탄·미사일·대전차로켓 등 인명 살상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함 등이다.
러시아에 북한의 대규모 파병이 이뤄졌다고 공식 발표한 나라는 지금까지 한국과 우크라이나 두 곳이다. 우크라 전쟁에 깊게 개입해 있는 미국과 나토, 그리고 러시아조차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고, 북한은 전혀 반응이 없다. 한국 국정원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내용을 밝힌 이후 우크라이나는 한국 국정원의 출처를 이용해서 다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밝히고 있다. 거기에 조금씩 내용을 더 추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11월 1일 북한군이 전선에 투입됐다는 것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22일 “6천명씩, 2개 여단의 북한군이 훈련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한국 국정원의 발표와 유사한 내용이다. 현재 세계의 언론은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발표를 거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군의 역할과 전세에 미칠 영향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행태가 위태로운 글로벌 안보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은 공통적이다. 해외의 군사전문가들은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되면 러시아는 북한군을 경험이 없는 최전선 전투에 투입하기보다는 공병 업무, 트럭 운전, 참호 파기, 차량 수리와 같은 지원 역할에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군이 군 생활이 길고 결속력이 있기 때문에 전투력이 의외로 강하다고 보는 시각도 꽤 있다. 북한군이 파병되면 현재 약간 우세에 있는 러시아가 힘을 얻어 1년 정도면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북한군 가세에 따른 상황 변화 때문에 한때 파장이 일었던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군의 전투 배치가 국제적 긴장을 극도로 높일 위험이 있고, 서방군과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이 러시아의 침략전에 개입하면 한반도 문제는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 전쟁 직전의 한반도 상황
한반도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집권 절반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처지만 어려운 게 아니라 국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한국 무인기가 평양을 침범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부 당국은 확인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이달 들어 세 번이나 한국 무인기가 침범했다면서 “재발한다면 핵무기를 포함해 모든 무기로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국민 사이에서는 평양 무인기 사태가 전쟁 발발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한-우크라 간 연대가 깊어질수록 북-러 지도부 간 전략적 협력은 더 깊어지는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7일 인민군 제2군단 지휘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나라를 적국, 타국이라 부르며 “한국이 주권을 침해하면 물리력을 조건에 구애됨 없이, 거침없이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지난 15일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도로·철도를 폭파하고 17일 이 조치가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규정)한 헌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7~8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한국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내용을 담아 헌법을 개정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인민군 총참모부가 “남부 국경의 동·서부 지역에서 한국과 연결된 우리 측 구간의 도로와 철길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버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철도 복원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한 것이다. 그해 7월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2002년 4월 임동원 국정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했다. 9월에는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연결사업 착공식이 열렸다. 2002년 말에는 경의·동해선 임시도로가 완공됐고, 2003년 6월 비무장지대(DMZ)내 군사분계선(MDL)에서 철도 연결식이 열렸다.
그 이후 이 도로를 활용해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기업의 인원·물류 이동이 이뤄졌다. 철도는 2007년 5월 시험 개통에 이어 2007년 12월 경의선 화물열차가 개통됐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11월 남북관계 경색으로 11개월 만에 중단됐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피격 사망을 계기로 중단된 이후 북한이 금강산 남측 자산 몰수하고 2019년 김정은의 지시로 남측 시설물을 철거했다. 2003년 6월 착공한 개성공단도 활발하게 가동되던 중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문제 삼은 박근혜 정부가 그해 2월 10일 일방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문재인-김정은의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했지만, 끝내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은 2020년 6월 북한은 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을 폭파했지만,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제 남북 간에 접점은 없다. 남북 사이에 제어되지 않는 대결 구도만 존재할 뿐이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4년 전 대북 전단을 이유로 남북 간 합의 하에 1년 넘게 운영해왔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폭파했던 행태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며 “퇴행적 행태를 반복하는 북한 모습에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진행되어 온 대표적 남북협력 사업으로 북한 요청에 의해 총 1억3290만 달러에 달하는 차관 방식의 자재 장비 제공을 통해 건설된 것”이라며 차관 상환 의무가 북한에 있다고 말했다.
□ 불확실한 미국 대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 5월 말까지였다. 러-우 전쟁과 동시에 내려진 계엄령하에서 대통령 선거는 무기 연기됐다. ‘전쟁통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사정은 자연스레 임기를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으로 정했다. 전쟁이 끝나면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2년 8개월 동안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전쟁은 11월 5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곧 끝날 수도 있다.
지난 7월 말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대선주자 바통을 물려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여론조사 지지율 격차를 한때 2%P 넘게 벌렸지만, 계속 줄어 20일 현재 0.9%에 그친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각종 여론조사 집계치다. 트럼프는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경합 주 7곳 모두에서 평균 1.0%P 해리스를 앞서고 있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우크라 전쟁을 곧 끝내겠다"고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갈수록 처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9월 유엔 총회 참석에 이어 유럽 주요국 수도를 순회하며 전쟁 지원 확약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23년 가을 이른바 반격전이 실패한 뒤 그의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인 2022년 3월 말, 90%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현재 50%를 상회하는 정도이고, 응답자 37%가 불신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크라 군 일부는 지난 8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방으로 진출했지만 1200㎞의 국내 전선 대부분에서 수세에 몰려 있다. 탄약과 포탄은 상시적으로 부족하고 병력 충원은 미뤄지고 있다. 미국과 나토의 지원이 미 대선 이후에도 계속될지도 불투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악 수준의 부패는 전쟁 중에 더 심해지고 있다. 오랜 전쟁에 지친 국민은 기본적인 안전과 생활 여건을 잃으면서 예민해진 상태다. 이대로 전쟁이 끝나면 그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신변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2년 전 워싱턴의 연방의사당을 방문했을 때 젤렌스키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지만, 지난 9월 26일 다시 찾은 미 의사당의 반응은 썰렁했다. 우크라 정부는 지난 봄 미 의회가 승인한 610억 달러 상당 지원안의 대선 전 집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중 80억 달러 상당의 활공 폭탄과 방공 미사일, 패트리어트 포대 등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젤렌스키가 요구한 장거리 미사일과 전투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은 끝내 승인하지 않았다.미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젤렌스키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러-우크라전은 끝날 것으로 관측한다. 그럴 경우 북한이 러시아와 함께 ‘승전국’임을 주장하면서 국내외에서 전략적 지위를 높이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한국이 ‘베트남 파병’을 통해 상당한 경제·군사적 이익을 얻은 것과 비슷한 상황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가능성이 커지고 유럽연합은 분열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북한은 ‘반미 반제국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며 내부 결집과 전략적 지위도 향상시키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파병을 통해 북한의 미래에 대한 답을 러시아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러시아 군사·정치전문가인 두진호 국방연구원 실장은 21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파병했다면 유사시에 러시아가 한반도 상황에 개입한다는 확약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어떤 동맹국도 파병하지 않았는데, 북한만 무기와 병력을 지원한다면 북·러 간에 상당한 협력이 이루어질 것으로 봤다. 두 실장은 북한은 한국전쟁 때 소련에 진 빚을 갚고,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을 보장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김정은의 구상은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러시아를 롤모델로 북한의 미래를 계획하려 할 것이다.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북-중-러’의 반미 전선을 고려해 상당히 신축적인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새로운 병력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의 파병이 러시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역사가 말하는 것
임진란·병자호란 양란 이후 한반도에 외국인이 들어온 것은 1894 동학농민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못 이겨 일어난 농민군이 4월 27일 전주성에 입성하자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5월 5일 청나라 군대가 아산만에 상륙하자 바로 다음날 일본군이 1885년 갑신정변의 실패로 청일간 맺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제물포에 상륙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일본군은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켰고, 1905년 을사늑약 체결, 1910년 조선을 병합했다.
36년간의 일본 통치가 이어진 후 1945년 7월 포츠담회담에서 연합국은 일본 축출을 결정했고, 8월 6일과 9일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 사이인 8월 8일 소련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약속한 대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원폭 공격을 당한 일본은 소련군을 맞아 강군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8월 10일 소련군에게 관동군이 무너져 만주를 점령당했고, 8월 11일 소련 항공군과 어뢰정이 함경북도 웅기항에 상륙했다. 8월 12일 소련 극동군 25군이 점령한 이후 웅기항은 소련 태평양 함대의 전진기지로 사용됐다
소련군의 남하가 의외로 빨리 이루어지자 8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펜타곤 3부조정회의를 열어 삼팔선을 책정했고, 8월 13일 미국의 삼팔선 획정안을 소련이 수락하면서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됐다. 그리고 9월 8일 오키나와에 주둔 중이던 미 육군 24군단(군단장 존 하지 중장) 이 인천 상륙하면서 한국은 외세가 지배하는 땅이 됐다.
역사가 말하는 교훈은 외세에 의존하면 결국은 국권이 외세에 지배당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라도 남과 북은 민족의 문제에 외세를 끌어들이려 하거나, 다른 나라의 전쟁에 남과 북이 함께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 전쟁에 남과 북이 뛰어들어 전쟁의 양상을 대리전처럼 전개하면 결국은 분단된 남북한이 최대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외세를 끌어들이면 10년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100년 이상 걸리게 만든다.
임순만 작가 ·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임순만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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