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의 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나는 수에 비해 제도적 지원은 법적근거가 없는 지역이 많고, 가족돌봄청년의 발굴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2021년 20대 청년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병원비 부담으로 집에서 홀로 돌보다 생활고와 간병을 감당하지 못하여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방치·사망케 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정부가 첫 실태조사를 시행한 것은 2023년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는 만 13~34세 ‘가족돌봄청년’은 전국에 4만 3천여 명에 달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그 수는 더 늘어났다. 20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에서만 19~39세 영케어러 규모가 12만 명을 넘는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모자 세대가 52.1%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고, 부모가 있지만 부모 간병과 가족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부모 자녀 세대’ 영 케어러가 29.3%로 다음을 차지했다.
영 케어러에 대한 인식 및 정책 대응에 대한 비교연구는 국가별 수준을 1~7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아그네스 레우 스위스 바젤대 교수가 2022년 ‘청소년 연구 저널’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법제도적 정비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서 영 케어러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마련된 수준으로 구분해 볼 때, 당시 우리나라는 7단계 무반응 국가 그룹에 속했다.
다행히도 상황은 좀 더 나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5단계인 인식정책 신생국 단계와 6단계인 인식 초기단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서울 등 일부 지자체에서 영 케어러 지원을 위한 조례를 만든 점 등을 고려하면, 올해 우리나라 대응 수준을 미국,프랑스과 같은 수준인 5단계와 일본, 인도와 같은 6단계 사이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2024년 7월부터 영 케어러 전담 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 울산, 충북, 전북에 거주하는 만 13세 이상 ~ 34세 이하 청년 2400명을 대상으로 소득 기준(중위소득 100% 이내)을 확인해 1년에 자기 돌봄비 200만원을 지급한다. 또한, ‘돌봄 코디네이터’를 전담 배치해 가족돌봄청년을 관리한다.
전문가들은 법률적 근거 마련이 먼저라고 말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가 있었지만 연령대를 만 13~34세로 정해 이보다 적은 나이의 아이들에 대한 정보는 빠져있다. 또한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위해 법률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정의, 발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원 대상의 연령이나 돌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들이 각기 다르고 이는 조사와 발굴 과정의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와는 다르게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또래 집단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국은 영 케어러를 위한 전담 매니저를 통해 영케어러의 감정, 가정생활, 경제적 어려움 등을 세심하게 파악한다. 그런 다음 영 케어러와 함께 가족 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전반적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방안도 제공한다. 영 케어러의 고립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활성화돼 있다. 자기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보조금도 매주 11만원 상당으로 제공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 케어러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 들고 나서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발굴이 필요하다”며 “중·고등학교에서 가정 상담 등을 통해 영 케어러들을 찾아내고, 지역 복지센터 등과 연계해줘야 한다”고 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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