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준비 중인 인공지능법 (AI Act)이 오는 6일로 예정된 최종 회담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 사이에서 챗 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규제하는 방식에 대해 이견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법은 지난 2021년 발의되어 2년간의 논의를 거쳤으며, 지난 6월 유럽의회를 통과한 뒤 세부적인 최종안 확정을 위한 협의만을 남겨놓고 있다. 로이터는 인공지능법의 최종 회담을 앞두고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초 모델'과 생성형 AI가 인공지능법을 둘러싼 협상의 주요 장애물로 남아있다고 1일 전했다.
특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생성 AI를 법을 통해 강력하게 규제하는 대신, 개발사가 AI를 자율적으로 규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어 합의 도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전에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의원들이 고위험 AI 규제와 같은 다른 여러 갈등 영역에서 타협을 이룬 상태였지만, 프랑스가 10월 30일 로마에서 열린 각국 경제장관 회의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이 자율규제 기조를 지지하도록 설득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로이터는 EU 각국의 전문가들이 이번 주에 모여 기초 모델과 소스 코드에 대한 접근 방식, 벌금 등 처벌 방식 및 기타 주제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며, 유럽의회 의원들도 모여 최종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만약 연말까지 전문가와 각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내년 6월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시점까지 법안이 지연될 경우, 최종적으로는 법안이 보류될 위험도 있다고 짚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미국, 중국 등에 대항할 자체 AI 육성을 위해 자율규제 기조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자국의 ‘미스트랄 AI’를 유럽 대표 LLM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선 상태다. 게다가 세드릭 오 전 프랑스 디지털 국무장관이 미스트랄 AI의 옹호 활동에 나서는 등 정치권과도 연계되어 있다.
독일 역시 자국의 AI 스타트업 알레프 알파에 5억 달러 규모의 대대적인 투자를 유치하며 독일의 대표 AI 기업으로 육성하려는 계획이다.
유럽의 주요 기업들 역시 인공지능법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지멘스, 르노, 까르푸, 에어버스 등 유럽 소재의 163개의 기업 관계자들이 얀 르쿤, 헤르만 하우저 등 전문가들과 함께 공개서한을 내 인공지능법이 과도한 규제로 유럽 AI 산업의 경쟁력과 기술 주권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한은 인공지능법으로 인해 기업들이 불균형적인 규정 준수 비용과 불균형적인 책임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혁신성이 뛰어난 기업들이 해외로 활동을 이전하고, 유럽 지역의 AI 개발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 결과 유럽 지역의 AI 개발이 미국에 비해 둔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자율규제 기조를 채택해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되며, EU 행정부가 강력하게 AI를 규제하도록 하는 원안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과학 미디어 및 민주주의 NGO인 아토미움(Atomium)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 EU 국가 지도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AI 기업의 규제에 찬성하는 이들 정부의 '반발'로 인해 규제가 위협받고 있다고 우러했다. 규제에 대한 반발로 인해 인공지능법 승인이 지연되고 있으며, 자율규제 기조가 채택되면 기업들이 공공 안전과 윤리적 문제보다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딥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튼 교수를 포함해 다수의 전문가들이 독일 정부에 기초 모델 규제에 대한 반대를 철회해 달라고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AI 전문가들은 AI에 의한 허위 정보 및 조작, 사이버 공격 등 첨단 AI로 인한 다양한 위험에 대해 경고해 왔으며 이러한 위험은 주로 가장 강력한 기초 모델에서 발생한다. 이는 백악관의 최근 AI 관련 행정명령과 이번 달에 28개국과 EU가 서명한 역사적인 블레츨리 선언에 반영되어 있다.”라며 “이러한 위험은 기초 모델 수준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인공지능법의 기반 모델에 대한 조항은 이러한 내재적 위험을 해결하기 때문에 EU의 번성하고 안전한 AI 생태계를 위해 필수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자율규제는 기초 모델 안전에 필요한 표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며, 하나의 불안전한 모델이라도 공공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자율규제에 대한 취약한 합의만으로는 EU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기초 모델의 안전성은 법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대중들이 AI 기초 모델에 대한 규제를 지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유럽의 시민단체 ‘컨트롤 AI’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기초 모델 규제를 지지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응답자 1,000명 중 80% 이상이 AI 모델을 배포받은 중소기업과 사용자가 AI로 발생한 손해와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전가받는 대신, AI 모델을 만든 기업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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