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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칩플레이션으로 서민은 더 힘들다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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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비자물가지수(가공식품)상승률 및 가격분위간 상승률의 격차, 출처-한국은행]

[이코리아]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자들은 고가 상품보다 저가상품을 더 많이 찾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사람이 찾을수록 가격은 인상된다. ‘칩플레이션’ 현상이다.

칩플레이션은 가격이 낮다는 의미의 ‘칩’(cheap)과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칩플레이션은 저가상품의 가격 상승률이 고가상품보다 더 가파른 현상을 뜻한다.

편의점과 마트는 물론 쿠팡, 컬리 같은 이커머스업계도 자체브랜드(PB) 일부 상품에 대해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가격 인상의 주된 원인은 원재료 가격 상승이다. 저가상품은 대개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며, 국내산보다 수입산 재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물류 대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수입 재료의 비용이 폭등하면서 불가피하게 가성비 PB 상품에 대한 가격까지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기업의 입장이다.

‘칩플레이션’은 세계적 현상이다. ‘칩플레이션’은 지난 2022년 영국 요리사 겸 빈곤퇴치 운동가인 잭 먼로가 소셜미디어에서 화두를 던져 주목받았다. 무엇보다도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고착화되면 장기적으로 인플레가 더욱 높아지고 이를 꺾기 위해 더 강한 긴축정책을 펴서 경기가 악화될 수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보통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속히 그리고 꾸준히 인상하여 총수요를 둔화시키는 긴축적 통화정책을 편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치솟는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얼마 전까지도 고금리를 유지하다 지난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금리 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지점에 도달했다”며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정책 입장을 바꿨다.

생활필수품의 가격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미시적인 정책들도 도입한다. 에너지가격 억제를 위한 유류세 인하와 생필품 가격안정을 위한 할당관세 등의 조치를 도입한다. 팬데믹 이후 일본 정부도 유가보조금을 확대했으며, 독일과 스페인 등은 일정 기간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 밖에 영국이나 이탈리아, 헝가리 등 유럽 국가들은 유가 상승을 배경으로 한 정유사들의 과도한 이윤에 대해 횡재세를 매기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계엄의 후폭풍으로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환율은 1450원을 넘어서고 있다. 급격히 오른 환율이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18일 “향후 인플레이션이 높은 시기에는 특히 중저가 상품의 가격 안정에 집중해서 취약계층의 부담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나섰다.

칩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정책을 준비해야 할까.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정의정책연구소의 정책지에서 “구체적으로 유류세 인하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이나 운송업체에 대한 보조금, 혹은 월정액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 정책 등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라며 “유류세 인하는 그 효과가 미미하고 석유 사용을 부추겨 기후변화 대응에도 반대될 뿐 아니라 혜택이 석유 소비가 큰 고소득층에게 돌아가는 역진적인 정책이다. 유류세 인하 대신 이 재원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에 돌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또한 “물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공투자 확대에 기초하여 생산성 상승을 촉진하고 총공급을 확대하는 노력이다.”라며 바이든 정부의 예를 들었다. 이 교수는 “바이든 정부는 ‘더 나은 재건’이라는 의제 하에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무상교육과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기 위해 4조 달러 규모의 대규모 공공투자 계획은 실패했지만, 최근 신재생에너지 투자와 전기차 구입을 위한 세금감면 등의 공공투자를 내용으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통과시켰다.”라며 “이는 결국 중장기적으로 에너지가격을 낮추어 인플레이션도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 진보적인 공급측 경제정책에 관해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유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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