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은행권 연말 인사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내년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중은행들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며 인적 쇄신에 나서는 모양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중 4곳이 신임 행장 후보를 추천했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으로 책임론이 불거진 조병규 행장 대신 정진완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을 차기 행장 후보로 추천했으며, 마찬가지로 올해 가장 많은 금융사고를 겪은 농협은행도 이석용 행장 대신 강태영 NH농협캐피탈 부사장을 신임 행장으로 내정했다.
안정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연임 전망이 밝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재근 국민은행장과 이승열 하나은행장도 이환주 KB라이프생명보험 대표와 이호성 하나카드 대표에게 차기 행장 자리를 물려주게 됐다. 정상혁 신한은행장만이 유일하게 2년의 추가 임기를 보장받으며 자리를 지켰다.
은행권 최고경영자(CEO) 인사의 키워드는 ‘영업통’과 ‘젊은 피’다. 실제 이환주 국민은행장 내정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세 명은 모두 현 행장보다 나이가 어리다. 특히 1968년생인 정진완 우리은행장 내정자와 1966년생인 강태영 농협은행장 내정자는 둘 다 50대다.
신임 행장 후보들이 모두 영업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통’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환주 국민은행장 내정자는 강남교보사거리지점장, 스타타워지점장에 이어 영업기획부장 을 맡아 전국 영업점을 총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호성 하나은행장 내정자 또한 대기업영업1본부장, 강남서초영업본부장, 중앙영업본부장, 영남영업그룹장, 영업그룹 총괄 등을 거친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꼽힌다.
신임 행장 중 가장 젊은 정진완 우리은행장 내정자도 종로3가지점장, 기관영업전략부장, 중소기업전략부장, 삼성동금융센터장, 테헤란로금융센터 본부장, 본점영업부 본부장 등을 거치며 영업 일선에서 경험을 쌓았다. 강태영 내정자도 여신·인사·기획 등 다양한 업무 경험을 축적한 데다, 농협은행 DT부문장 재임 시절 농협금융지주 디지털금융부문 부사장을 맡아 뱅킹 앱을 슈퍼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이끌기도 했다.
시중은행들이 그동안 지켜오던 ‘2+1’ 관행을 무시하고 일선 영업 경험이 풍부한 젊은 피를 수혈하며 세대교체에 나선 이유는 내년 실적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금리인하로 이자이익 축소가 불가피한 데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규제로 여신영업 또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여기에 가계·기업을 가리지 않고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데다, 강달러 추세에 탄핵정국이 겹쳐 고환율까지 지속되면서 건전성 부담 또한 가중되고 있다.
이미 은행권의 실적 하락 추세는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8.8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000억원 감소했다. 물론 1분기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사태의 영향이 컸지만, 3분기 순이익만 봐도 6.2조원으로 전분기 대비 1조원 감소하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올해 은행의 실적과 향후 경영과제’ 보고서에서 은행권의 3분기 실적 악화에 대해 “전체적으로 이자부자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순이자마진(NIM)이 큰 폭으로 하락한 영향으로 이자수익이 감소한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라며 “대손비용의 측면에서는 국내은행 연체율이 2022년 6월을 저점으로 증가하고 있고, 최근 중소기업대출과 가계신용대출의 연체율이 늘어나면서 향후 대손비용의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전망도 밝지 않은 편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영도 금융연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은 실물경기 둔화 움직임, 기준금리 피벗 기조의 시작, 가계대출 억제 및 기업대출에서의 경쟁심화, 신규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 자본규제 강화 움직임과 밸류업 정책 도입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가계대출의 확대를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 그리고 건정성 모두를 잡던 시기는 가계대출 누증과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증가로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은행권의 안정적인 실적을 보장했던 요소들이 모두 불확실해진 만큼, 시중은행들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안정’보다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은행권을 강타했던 다수의 금융사고도 인적 쇄신의 명분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은행권은 올해 수십~수백억 규모의 횡령·배임 등 각종 대형 금융사고로 곤욕을 치렀다. 농협은행은 올해 들어 총 6건, 약 43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겪었으며, 우리은행도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가 은행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 행장을 교체해 조직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의도가 연말 인사에서 나타난 셈이다.
반면, 올해 시중은행에 비해 금융사고 논란에서 자유로웠던 지방은행의 경우 시중은행과 달리 안정을 중시한 인사가 두드러졌다. 실제 백종일 전북은행장과 고병일 광주은행장은 모두 연임에 성공하며 1년의 임기를 보장받았다. iM뱅크 또한 안정적인 시중은행 안착을 위해 1년 더 황병우 DGB금융지주 회장의 행장 겸임 체제를 지속하기로 했다.
한편, 김 연구위원은 “과거 주택담보대출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계대출의 확대를 통해 은행이 가졌던 모든 숙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라며 “은행 본연의 기능인 생산적인 곳에 자금을 공급하고 이에 대한 과실을 나누는 본연의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을 이끌어갈 신임 행장들이 기존의 수익 모델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해원 기자
저작권자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 많은 기사는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연금 말로만 '탈석탄', 그린워싱 비판받는 이유 (0) | 2024.12.26 |
---|---|
위기의 석유화학업계 살리기, 정부 대책 실효성은? (2) | 2024.12.24 |
농협은행 수장에 강태영 부사장 내정, 강호동 회장과 동향 출신에 디지털 역량 갖춰 (1) | 2024.12.23 |
‘뻥튀기 상장’ 논란 파두·주관사 검찰行... 주가 낙폭 확대 (2) | 2024.12.23 |
무탄소에너지 도입 서두르는 국내 기업은? (0) | 2024.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