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 가운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이코리아]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최악의 글로벌 시황 속에서 정부의 지원책을 기반으로 사업 구조조정에 나선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합동으로 23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침체된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우선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과잉 NCC(나프타 분해설비) 설비 합리화를 추진한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역 경제 타격이 우려되는 지역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협력업체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 요건이 완화되고, 금융 지원이 강화된다. 또한, 관련 자산 양수·양도에 대한 과세이연 기간을 기존 ‘4년 거치 3년 익금 산입’에서 ‘5년 거치 5년 산입’으로 연장하며, 설비투자와 운영자금을 위해 3조 원 규모의 저리 정책금융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매수자가 수익 발생 후 규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정부는 국내 NCC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운스트림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전환을 촉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주회사 규제 유예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고, 사업재편 승인 기업이 경영위기를 겪을 경우 고용유지지원금 대상에 포함되도록 개선한다. 이를 통해 매수자가 수익 발생 후 규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정부는 또 석유화학 산업의 사업재편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총 3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 자금을 공급한다.
이와 더불어 기업들이 합작법인 설립이나 신사업 M&A를 추진할 때 기업결합 심사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사전컨설팅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자료 제출 범위 등을 미리 조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설비 운영 효율화를 위한 정보 교환 사전심사 기간도 기존 30일에서 15일로 단축된다.
아울러 산업부는 납사 및 납사 제조용 원유에 대한 무관세 기간을 내년 말까지 1년간 연장한다. 또 '2025~2030년 R&D 투자 로드맵'을 내년 상반기에 수립하고 민간 투자에 매칭해 '고부가·친환경 화학소재 기술개발'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을 추진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2028년까지 글로벌 공급 과잉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석유화학 업황 악화에 올해 3분기 LG화학 석유화학부문·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은 모두 300억 원대 영업손실이 났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이어오고 있으며, 금호석유화학은 이들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2.8% 감소했다.
이에 석유화학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적인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월 말레이시아의 합성고무 생산 법인 청산을 발표했으며, LG화학은 올해 3월 여수 스티렌모노머(SM) 공장의 가동 중단에 이어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의 지분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조치가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지원책 체감도가 낮음에 대한 아쉬움도 표출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 자율에 맡기는 부분이 크며, 공정거래법 규제 유예 등 더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내년 상반기 기업들의 추가적인 어려움을 바탕으로 후속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증권가에선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 석화업계 NCC의 숨통을 틔워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23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최근 3년 간 한국 대비 유가 4~8%, 납사 4~5% 저렴한 원재료를 사용했다"며 "트럼프2.0에서 이러한 국면 종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3년 간 NCC의 부진 원인으로 △중국 중심의 에틸렌 대규모 증설(2020~2023) △글로벌 수요 부진(고금리, 고물가, 중국 경기 둔화) △고유가로 인한 원가 부담 증가△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대만 업체의 원가 우위 심화 등을 꼽았다.
윤 연구원은 "중국은 저렴한 러시아 및 이란산 원유를 대량 도입했고, 반면 한국은 러시아산 납사 공급 중단으로 원가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2.0의 정책은 한국 NCC의 원가부담 경감과 경쟁국의 원가 우위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원유/가스 생산 확대를 위한 각종 규제 완화와 사우디와의 관계 회복 전략 등은 유가 하향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하나증권은 WTI를 2024년 평균 76$/bbl에서 2025년 60~70$/bbl 수준으로 안정화 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이란/러시아에 대한 외교정책 스탠스 변화는 그간 원가 측면에서 수혜를 누렸던 중국/대만 등 아시아 경쟁업체의 원가 우위 국면 종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중국의 강력한 통화/재정정책 예고도 수요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이라고 전했다.
윤 연구원은 또 "한국 석유화학 업계의 반등 가능성을 고려해 S-Oil, 유니드, 롯데정밀,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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