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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국민연금 말로만 '탈석탄', 그린워싱 비판받는 이유

by 이코리아 티스토리 202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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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연금

[이코리아] 국민연금이 ‘탈석탄’을 선언한 지 3년 7개월 만에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도입했지만, 시민사회에서 오히려 그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기준을 설정했다며, 국민연금이 기후위기의 무임승차자가 되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기금위 회의’를 열고 ‘석탄 관련 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전략(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기금위는 ‘석탄기업’(발전·채굴 등)의 판별 기준을 ‘최근 3년 평균 석탄 매출 비중 50% 이상’으로 설정하고, 국내 석탄기업에 대해서는 5년간 비공개 대화를 통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유도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도입한 것은 지난 2021년 탈석탄을 선언한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국민연금은 같은 해 5월 열린 기금위에서 석탄채굴 및 발전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을 도입하는 내용의 ‘국민연금기금 투자제한 전략 도입방안(안)’을 심의·의결한 바 있다.

이후 연구용역을 맡은 딜로이트안진이 2022년 4월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5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아직 석탄발전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부담과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 등에 대한 장고가 이어지면서 투자제한 기준 도입이 지연됐고, 결국 탈석탄 선언 이후 기준 도입까지 3년 7개월의 시간이 걸리게 됐다.

장고를 거듭해 도입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이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오히려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비중을 낮추고 국내 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유도하기에 는 이번에 설정된 기준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기금위가 석탄 투자 제한 기준 도입을 발표한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이번 석탄투자 제한 전략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도, 좌초자산으로 인한 국민연금 수익률 하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없다”라며 “기금위,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은 ‘장고 끝에 최악의 수’를 선택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석탄기업 판별 기준인 ‘3년 평균 석탄 매출 비중 50%’는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해외 연기금 및 글로벌 금융회사 등은 대체로 ‘석탄 매출 비중 30%’를 투자 제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네덜란드 공적연기금(ABP),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등은 석탄 매출 비중 30%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 블랙록(25%), 독일 보험회사 알리안츠(25%) 등도 엄격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운용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비슷하게 50%를 석탄기업 판별 기준으로 삼은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정도다.

매년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는 독일 비영리기관 우르게발트는 이보다 낮은 20%를 권고하고 있다. 실제 알리안츠의 경우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오는 2040년까지 0%로 낮춰 완전한 탈석탄을 달성할 계획이다.

환경단체들은 해외 연기금 및 금융회사보다 높은 50%를 적용할 경우 실질적인 석탄 투자 제한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 석탄기업 투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 24.4조원으로, 이 가운데 석탄 매출 비중 50% 이상은 발전 공기업 6곳, 2.1조원에 불과하다.

해외 자산의 경우 총 9.2조원 중 석탄 매출 비중 50% 이상은 2000억원뿐이다. 3년 7개월간 기다린 탈석탄 실천의 성과가 겨우 2조원 남짓의 석탄 투자금액을 줄이는 것뿐이라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기후솔루션,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19일 공동 성명을 내고 “석탄기업 분류 기준을 매출 50% 이상으로 설정하고 적용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명백한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이 경우 국민연금 전체 석탄투자액의 약 85%를 차지하는 한국전력공사 및 석탄발전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자회사 등은 투자 배제 기준에서 빠져나가게 된다”라며 기준을 30%로 하향할 것으로 요청했다.

포럼 또한 “기금위와 보건복지부는 50%로 결정함으로써, 석탄 매출 혹은 석탄설비 용량 비중 49.999% 기업은 석탄기업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어 버렸다”라며 “이러한 결정이 오히려 국내 석탄 기업 전반의 에너지 전환을 지체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이어 “해외 연기금 및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의 정량 기준 20% 혹은 30%는 환경적 이유도 있지만 석탄투자가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에 따른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나온 수치”라며 “기후위기의 심각성, 좌초자산 우려 등을 고려하여 향후 정량기준 50%는 언제든지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년간 대화를 통해 석탄기업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유도한다는 계획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럼은 기금위의 투자전략에 “기금위에서 석탄기업의 에너지 전환 노력 등을 인정하여 의결한 경우 대화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50% 이하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투자제한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포럼은 이어 “이 단서가 석탄기업의 에너지 전환에 안이한 신호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충격, 경제상황 등을 핑계로 기금위가 대화기간을 연장해 줄 수 만능 카드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높다”라며 “최후 수단인 투자제한 무기가 무력화된다면 관여활동도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고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연금이 마련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은 해외자산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국내자산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2030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3년 7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마련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이 한국의 탄소중립을 앞당길 수 있을지, 아니면 실효성 논란에 휘둘려 지속적인 재검토 요구에 직면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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