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베이
[이코리아] 지난해 게임업계에서 '크런치' 관행이 줄어드는 등 일부 개선된 모습을 보였으나, 근무 시간은 오히려 늘어나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3일 <2024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며 이와 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국내 게임산업 종사자 1,51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작성되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크런치 모드’를 경험한 비율은 전년 대비 3.9%p 감소한 34.3%로 집계되었다. 크런치란 게임 출시 직전 기한을 맞추기 위한 야근과 추가근무, 주말근무 등의 높은 강도의 노동을 뜻한다.
= 콘진원 제공
다만, 크런치의 경험 비율은 줄어든 대신 근로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조사에 따르면 크런치 시기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은 56.1시간으로 전년 대비 4.5시간 증가했으며, 전체 종사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44.4시간으로 종사자들이 희망하는 40.3시간과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회사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노동 시간 외 추가적으로 사무실 밖에서 회사 일을 하는 '회사 밖 비공식적 노동시간' 역시 평균 2022년의 3.1시간에서 지난해에는 5.7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대해서는 58.7%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종사자들은 실행 전제조건으로 ‘근로시간에 대한 명확한 보상 체계 구축(45.0%)’과 ‘포괄임금제 폐지(42.9)’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현재 69.9%의 종사자가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으며, 특히 5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는 90% 이상이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노동 환경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 화섬식품노조 누리집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노동 조합 설립이 이어지며 종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다. 지난 2018년 넥슨에서 최초의 게임업계 노동조합 '스타팅 포인트'가 설립된 이후 2023년에는 엔씨소프트와 NHN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으며 지난해 5월에는 넷마블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며 국내 7번째 게임업계 노조가 탄생했다.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는 지난해 7월 ‘IT산업·노동자 실태조사 킥오프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조합이 설립된 대기업과 노동조합 설립이 어려운 중소기업 간 노동환경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위원회는 중소 규모 IT·게임 기업이 다수 위치한 구로·가산 디지털단지를 중심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회토론회와 기자회견을 추가로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열린 환노위 국정감사에서는 국내 상장 게임사 중 시가총액 1위인 크래프톤의 김창한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해 IT업계 포괄임금제에 대한 질의를 받았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크래프톤이 시행 중인 고정 OT제도가 불법적 포괄임금제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에 김창한 대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용중인 제도이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또 김 대표는 크래프톤이 추가 연장근로와 야간, 휴일 근로 수당은 별도로 구분해 법정기준에 맞춰 보상휴가를 제공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 IWGB 누리집
한편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크런치 모드에 대한 문제인식이 확산되며 종사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해외에서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너티독, CDPR, 락스타 등 여러 유명 게임사에서 크런치 모드가 문제가 되어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게임사 액티비전의 직원 6백여 명은 지난 3월 미국 통신 노동자 협회(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의 도움을 받아 미국 최대 규모의 게임사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며 ‘사이버펑크 2077’, ‘위처 3’로 유명한 폴란드의 개발사 CDPR 역시 지난 2023년 ‘폴란드 게임개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
그 밖에 블리자드, 레이븐 소프트웨어, 제니맥스, 아발란체 스튜디오, 세가 아메리카 등 굵직한 글로벌 게임 개발사에서 노조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 게임매체 게임즈인더스트리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게임 개발자 노조인 Independent Workers of Great Britain(IWGB)은 2024년 10월, 첫 번째 선언문을 발표하며 크런치 근무 철폐와 고용 안정성, 공정한 수익 분배를 요구했다. IWGB는 "게임산업은 이제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강조하며, 잦은 구조조정과 과도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주 4일제 도입과 초과근무 보상 강화, 정신 건강 보호를 위한 병가 보장 등 다양한 개선 방안을 선언문에 포함시켰다.
독일에서는 2024년 8월, 유럽 최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인 데브컴(devcom)에서 게임 노동자들이 노조 'ver.di'와 함께 Game Devs Round Table(GDRT)을 출범하며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요구를 발표했다. GDRT는 공정한 임금, 집단 협약 체결, 투명한 의사결정, 성평등 등의 목표를 내세우며 독일 게임산업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했다.
현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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