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에는 여러 종류의 편향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대체로 이득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해에서 맛보는 실패를 더 크게 여기는 편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동전 던지기 게임을 제안하면서, 앞면이 나오면 100,000원, 뒷면이 나오면 0원을 받는 게임을 하겠냐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게임에 임한다. 반면, 앞면이 나오면 150,000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50,000원을 내야 하는 게임을 하겠냐고 물으면, 이 게임에 임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든다. 두 게임의 수학적 기대값이 똑같이 50,000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편향을 ‘손실 회피’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할인 혜택을 놓칩니다"와 같은 마케팅 메시지에 의외로 쉽게 넘어간다. 그것이 손실 회피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손실 회피 성향은 학습과 교육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적인 과제를 꺼리는 경향을 가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실패를 학습 과정의 일부로 수용하는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손실 회피를 포함한 대부분의 편향은 지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금융 투자에 있어, 보통의 투자자들은 손실을 피하기 위해 보수적인 선택을 선호하는데, 만일 누군가가 확률에 대한 지식을 쌓고, 손실 회피에 대해서도 배우고 훈련한다면, 손실 회피를 따르지 않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더 큰 이익을 얻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배움이란 본질적으로 기존 자기 생각 밖의 무엇을 받아들이는 일. 자기를 벗어나야 성장이 온다. ‘진실은 자기 느낌과 생각 너머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일, 그것이 교육이다.
대부분의 인지적 편향이 지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교육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지점이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또는 절망적이게도, 지적 수준이 높아져도 완화되지 않는 편향도 존재한다. 바로 ‘우리편 편향’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편 편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념을 지나치게 옹호하며 객관적인 정보를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편이 맞다’고 생각하는 편향이다. 얼핏 들으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서, 그런 편향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일 것만 같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우리편 편향은 다른 편향과 달리 개인차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나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노동자나 지식인이나 할 것 없이 골고루 ‘우리편 편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에 필자는 어찌하여 저렇게 자기 과실이 드러나 유죄 판결을 받거나 감옥에 간 정치인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지지하며, 더 나아가 그에게 죄가 없다고 믿기까지 하는지, 심지어 그가 핍박받는 예수라고까지 비유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별히 대학 교수와 같은 지식인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한다. 우리편 편항은 개인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독 지식인들에게서 견고하게 나타나는 편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육 수준이 높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 세련된 논리와 근거를 사용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며 상대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우리편 편향은 강화될 수 있다.
키스 E. 스타노비치의 『우리편 편향』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원제는 『The Bias That Divides Us』다. 직역하자면, ‘우리를 나누는 편향’이다. 그렇다면, 우리편 편향이 우리를 나누고 있다는 말인데, 여기서 ‘우리편 편향’을 영어로 하면, my-side bias 즉 ‘내 편 편향’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원제는 ‘우리를 나누는 내 편 편향’이 된다. 그렇다. 내 편이 항상 옳다는 생각이 세상을 나의 편과 나의 적으로 이분하고, 그런 생각과 행동이 바로 우리를 우리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워낙 어수선하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를 틀어도, 늘 탄핵이 어쩌니, 차기 대선이 어쩌니 하면서 양쪽 진영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자녀들은 내게 묻는다.
“아빠, 누가 잘못한 거예요?”
‘오, 얘들아,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겠니?’
나는 자녀들에게, 이쪽이 이런 것을 잘못했지만, 이쪽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이유로 이렇게 했을 것이고, 저쪽이 이런 점에서 부족하지만, 저쪽은 또 저런 이유에서 그랬을 것이라 설명한다.
자기 편을 가진 사람들이 듣는다면, 답답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양비론은 재미가 없다. 인기도 없다. 세상을 여집합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기 편이 아니면 전부 남의 편인 세계관에서는 누군가 자기 편을 들지 않는다면, 그는 즉시 경계 대상이 된다.
우리편이 없는 사람은 외롭다. 그래서 또 사람들은 우리편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자녀들이,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무조건적으로 어느 쪽의 편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우리편에 빠지지 않아야 우리를 지킬 수 있다. 외로울 줄 아는 용기를 배웠으면 한다. 진실은 우리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이송용 교육가
[필자 소개] 이송용 순리공동체홈스쿨 교장, 전 몽골국제대학교 IT 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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