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한화오션의 쇄빙LNG 운반선(172.4K CBM ARC7 LNG CARRIER). 출처=한화오션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포항·울산 등 동남권 발전을 위해 '북극항로' 개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항로의 항해 가능 기간이 증가하고 물동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화물이 대륙철도와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갈 미래 비전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극항로 제해권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북극항로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 북극항로 대비 기술력 확보 중
북극해 항로의 개발은 에너지 자원의 97%를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은 세계 7위 석유 소비국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석유를 중동산으로 대체하면서 지난해 기준 중동 의존도는 70%가 넘는다. 중동지역에서 한국까지 약 1만2000km에 달하는 석유수송로는 문자 그대로 한국 경제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북극항로 개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1년 '북극해 항로개발의 자원개발 및 에너지 안보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북극항로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보고서는 "북극항로는 서유럽과 극동아시아 간 운항 거리를 대폭 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한국처럼 에너지 자원의 97%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에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북극해 항로개발에 따라 동쪽으로 연계된 해로를 택하는 상당수의 선박이 한국의 동해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부산, 울산 등 환동해권 항만들이 직접적인 수혜처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에너지 자원을 포함한 물류거점 기회를 선점할 경우에 다국적 기업들의 최종 조립공장, 금융/보험, 정유, 항만, 선박 등의 관련 투자가 이 지역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경제적 효과도 기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계도 관련 기술 개발을 서둘러 왔다. 쇄빙선 건조는 일반 상선보다 난이도가 높고 가격이 높아 조선 3사에게는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로 평가된다.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를 위한 쇄빙 LNG 운반선을 건조했으며, 삼성중공업과 HD현대중공업도 러시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협력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12일 <이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2014년 세계 최초로 쇄빙 LNG 운반선을 수주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척의 ARC-7급 쇄빙 LNG 운반선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쇄빙 LNG 운반선은 일반 LNG선보다 강판 두께가 두껍고(30~40mm), 얼음과 충돌하는 부분에는 70mm 특수 강판이 사용된다. 또한 일반 선박과 달리 15MW급 아지포드 추진기 3개를 장착해 2.1m 두께의 얼음을 깨며 7노트 속도로 운항할 수 있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
◇북극항로 개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치나?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가속화되면서 2030년경 여름철 북극 얼음이 소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해운업계는 북극항로 활성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선제적인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북극 운송회랑을 선점하기 위해 유럽을 중심으로 △극지 해빙정보(빙두께, 빙집적도 등) 제공 기술, △연중 단독 운항이 가능한 선박 설계 기술(선수/미 설계, 부가물 설계 등), △항해지원 기술(유빙 충돌회피 기술, 선박 안전속도 예측 기술) 등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북극항로 활성화에 대비하여 주요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극지항해 정보 가시화 기술, 국제기구(IMO, ISO 등)의 기술·환경 규제 및 국제표준화 대응을 위한 제반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북극항로 장악 시도와 한국 조선업의 기회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극항로 장악을 시도하면서, 한국 조선업계의 쇄빙선 수주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다만, 북극항로의 해상 운송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쇄빙선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선제적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극항로는 경제적, 군사적, 지정학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며,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아시아-유럽 간 운항 거리를 30%, 항해 기간을 10일 단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북미-유럽 항로에서는 기존 대서양 직항이 효율적이지만, 미국(걸프만)-아시아 항로에서는 파나마운하 통행료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연구원은 "쇄빙 LNG선을 포함한 쇄빙 등급 선박 발주 가능성은 낮으며, 미국 내 쇄빙선 건조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미국의 '존스법' 개정 또는 예외 조항 발효 없이는 한국 조선소에 쇄빙선 발주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스법은 미국 내에서 건조된 선박만이 미국 내 해상 운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한국 조선소의 수주 기회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이 북서항로(NWP) 개발을 본격화한다면 글로벌 선주들의 쇄빙 등급 선박 발주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쇄빙선 건조 경험이 있어 북극항로 시장에서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극항로의 활용이 본격화될 경우, 해운사와 조선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쇄빙선 건조와 관련 인프라 구축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여 국제적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전략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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