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 대형 손해보험사 순이익 및 지급여력비율 추이.(단위: 억 원, %) 자료=각 사
[이코리아]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지급여력비율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보험업 전망이 불확실한만큼 선제적인 건전성 관리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빅5’ 손보사들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5대 손보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총 7조4265억원으로 전년(6조4077억원) 대비 15.9% 증가했다.
보험사별로 보면, 삼성화재는 전년 대비 14% 증가한 2조73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업계 최초로 2조 클럽에 입성했다. DB손보는 전년 대비 15.3% 증가한 1조7722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메리츠화재(1조7105억원, 9.2%)를 제치고 2위 수성에 성공했다.
현대해상은 전년 대비 33.4% 증가한 1조307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빅5’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KB손보 또한 전년 대비 17.7% 늘어난 839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5대 손보사 순익이 7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실적 거품 논란이 일며 금융당국의 규제가 강화됐음을 고려하면 손보사들의 선전은 더욱 의미가 크다.
하지만 역대급 실적에도 불구하고 손보사들은 좀처럼 웃지 못하는 모양새다. 순이익은 크게 늘어났지만 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손보사들의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하락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DB손보의 지난해 말 기준 킥스 비율은 201.5%로 전년(233.1%) 대비 31.6%포인트 급감했다. 현대해상 또한 같은 기간 173.2%에서 155.8%로 17.4%포인트 하락하며 금융당국 권고기준인 150%에 턱걸이한 상태다. KB손보의 킥스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88.1%로 전년(215.9%) 대비 27.8%포인트 하락하며 200%선 아래로 내려갔다.
그나마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양호한 킥스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메리츠화재의 지난해 말 기준 킥스 비율은 247.6%로 5대 손보사 중 유일하게 2023년 말(242.4%)보다 건전성이 개선됐다. 삼성화재(265.0%)는 같은 기간 킥스 비율이 8%포인트 하락했으나, 상대적으로 다른 손보사 대비 하락폭이 작았다.
손보사 전체로 넓혀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NH농협손보의 킥스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75.6%로 전년말 대비 141%포인트가 급감했다. 롯데손보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59.8%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순이익(272억원)이 전년 대비 91%나 줄어든 만큼 4분기 말 기준으로는 금융당국 권고기준인 150% 이하로 하락했을 가능성도 있다.
손보사들의 킥스 비율이 지난해 하반기 들어 크게 하락한 것은 제도 변경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강화된 무·저해지보험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보험사들이 해지율 가정을 유리하게 적용해 실적을 부풀리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제도 변경으로 보험부채는 증가하고 보험계약마진(CSM)은 감소하면서 킥스 비율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
문제는 올해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해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금리인하 흐름이 보험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리가 하락하면 신규 보험계약 마진이 줄어들어 수익성이 악화하고 킥스 비율도 하락할 수 있기 때문.
손보사의 핵심 수익원인 자동차 보험 손해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자동차보험 손해율에 투영된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까지 안정됐던 자동차차보험 손해율은 2024년 들어 다시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7개 대형 손보사의 지난해 10~11월 평균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9.3%로 전년 말 대비 9.3%포인트 높아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폭설·산불 등 자연재해 증가, 물가상승에 따른 부품·공임비 증가, 경상환자의 기한 한정 없는 치료를 보장하는 제도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5대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손익도 지난해 들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DB손보가 1710억원으로 유일하게 1000억원을 초과했지만, 이는 2023년(3210억원)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삼성화재(1900억원→960억원), 현대해상(2010억원→190억원), KB손보(4880억원→870억원) 등 모든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손익이 급감했고, 메리츠화재는 109억원의 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건전성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손보사들은 자본확충을 위해 앞다퉈 자본성 증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DB손보는 지난 20일 4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했으며, 메리츠화재도 같은 날 3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KB손보와 현대해상도 다음 달 각각 최대 5000억원, 8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자본성 증권 발행을 통해 킥스 비율을 끌어올리더라도, 함께 늘어나는 이자비용은 장기적으로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황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손보사들이 건전성 관리와 실적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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